꽃의 욕심
선뜩한 쪽빛을 담고,
찬란한 햇빛을 가두려다
이내 다 타버리고,
끝내 고개를 숙이지
나는 왜 글을 쓸까?
세상의 선뜩함과 찬란함, 인생을 살아가며 특별한 매순간을 시에 담으려 하지만 어느 순간 글쓰기의 한계에 부딪히면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나에게 묻는다.
“왜 글을 쓰는가?”
그리고 이렇게 두서없이 생각을 정리한다
첫째, 글쓰기는 나에게 지난날을 성찰하고 회복하는 과정이다. 시는 주변을 돌아보게 하고, 에세이는 반성과 다짐을 이끌어낸다. 그렇게 글은 매 순간 ‘시작’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둘째, 끝이 정해진 삶 속에서 흔들리는 나를 붙잡는 방법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 나아갈 길을 재확인하는 나침반과 같다. 예컨대 짧은 시 속에서 삶과 죽음의 교차점을 확인하며, 죽음을 또 다른 시작으로 사유함으로써 두려움을 평온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셋째, 글쓰기는 교육적 실천이자 사명이다. 교육 현장에서의 즉흥적인 글쓰기는 흔히 ‘가볍다’고 여겨지는 에세이의 성격을 넘어선다. 플로깅, 환경교육, 원격교육과 같이 교육의 한 축을 고민하며 쓴 글은 교육자로서의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진다. 글쓰기는 교육행정공무원으로서의 사명감을 구체화하는 도구이자, 교육 공동체를 움직이는 작은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넷째, 글쓰기는 존재에 대한 탐구이자 소통의 도구이다. 글을 통해 나는 내 목소리를 내고, 동시에 타인의 삶과 내면에 귀 기울인다. 그렇게 글은 한 인간으로서의 외로움과 단절을 함께 사유하게 하고, 존재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게 한다. 결국 글쓰기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며, 그 속의 소통은 외로움을 걷어내는 가장 깊은 기쁨이 된다
마지막으로, 나는 평균수명이 90세를 넘는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60세 이후 육체노동으로는 경제적 도움을 얻기 어렵기에, 글쓰기와 창작활동은 작은 수익의 원천이자 삶을 지속하는 또 다른 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경제적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창작은 곧 배움의 연장이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다. 나는 글을 쓰며 배우고, 나누고, 연결됨으로써 노년에도 새로운 시작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