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플로깅 이야기
브런치를 시작하고 두 번째 공모전 당선 글(체험수기)입니다. 나의 행동을 기록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결실로 이어지니 좋은 일입니다.
새벽 적막한 공원,
주인 잃은 쓸쓸한 잔해들
몸을 낮추어
흐트러진 추억을 걷어내면
어둠을 넘어
약속한 듯 떠오르는 해
어떤 변화는 종종 예기치 않은 장면에서 시작된다. 나이와 함께 늘어나는 뱃살을 걱정하며 집 앞 공원을 달리다 돌아오던 어느 여름날 아침이었다. 후미진 골목길에 매일 늘어가는 쓰레기들을 치우자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나의 자원봉사활동, 지구 반대편 스웨덴에서 시작된 달리기와 함께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활동의 계기가 되었다. 플로깅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다. 하지만, 작은 실천이 가져오는 변화는 생각보다 깊고 넓게 퍼져나갔다. 주변 쓰레기를 조금 치워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되었지만, 반복되는 실천은 어느새 삶의 방향까지 바꾸고 있었다.
플로깅이 일상이 된 것은 2019년 원주 기업도시, 이름조차 아름다운 가곡리(佳谷里)로 이주하면서부터다. 깨끗하게 정리된 공원을 매일 달리며, 발끝에 걸리는 플라스틱 컵이나 담배꽁초가 눈에 밟혔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다니는 길이라도 깨끗하게 해 보자.’ 그렇게 시작한 작은 행동은 습관이 되고, 내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게 된 것이다.
꾸준한 실천과 함께 건강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쓰레기를 줍기 위해 달리는 중간에 몸을 낮추고 다시 일어서는 동작은 자연스럽게 런지(lunge)와 스쿼트(squat)가 되었고, 플로깅은 유산소와 근력 운동이 결합된 훌륭한 전신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매일 5km 이상을 달린 지 3개월이 지나자 체중은 10kg 가까이 줄어 정상 범위로 돌아왔고, 하체 근력도 눈에 띄게 강화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변화는 마음이었다. 주변을 깨끗하게 만들겠다는 작은 의지는 어느새 “민주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깨끗한 공간은 범죄를 줄이고, 작은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다.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매일 달리며 쓰레기를 줍는다. 달리다 보면 쓰레기뿐 아니라 파손되거나 위험해 보이는 시설물도 눈에 들어온다. 그럴 때는 잠시 달리기를 멈추고 “안전신문고” 앱을 이용한다. 잠깐의 수고로 누군가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항상 수고하시네요. 멋지십니다.”, “덕분에 길이 깨끗해서 좋습니다.”
아무도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의 작은 봉사 활동은 이웃의 환한 미소로 돌아왔고, 그 미소는 다시 나를 움직이게 했다. 선한 영향력이 퍼지는 “테레사 효과”처럼, 봉사하는 작은 손끝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니... 그렇게 플로깅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잇는 매개체가 되어갔다. 이후 이러한 특별한 경험을 놓치고 싶지 않아 블로그에 글을 게시하고, 짧은 유튜브 영상도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공유했다. 기록이 쌓이면서 나의 작은 봉사활동은 자연스럽게 외부에 알려졌고, 혼자 시작한 봉사활동은 직장 내 플로깅 동호회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한편 올해 발령받은 학교에서는 교내 IB연구회를 중심으로 환경교육과 관련한 국제 교류활동을 기획하고 있었고, 나는 학생들과 함께 이를 현장에서 실천할 방안을 모색하며 선생님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지난 10월에는 태국 탐마삿초등학교 학생과 교사를 초청해 원주 소금산 그랜드밸리에서 지속가능한 환경을 주제로 한 플로깅 행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올해 새로 개장한 케이블카의 매표소 직원은 집게와 봉투를 든 우리를 보며 “이곳은 쓰레기가 없는데...” 라며 걱정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우리는 세 시간 남짓 함께 뛰고 걸으며 준비한 50리터 봉투 두 개를 가득 채웠고, 우리의 행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이웃은 “어린 학생들이 수고가 많네요. 덕분에 동네가 깨끗해졌어요.”라는 말과 함께 맛있는 간식을 나눠 주기도 하셨다. 이렇듯 나는 플로깅을 통해 만나는 이웃의 감사 인사에 자기효능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집 앞 공원을 달리며 매일 새롭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만나며 존재감 또한 확고해진다.
최근 1365 자원봉사포털을 통해 ‘깨끗한 원주 만들기 환경정화 봉사활동’을 알게 되었다. 스마트폰 사진 인증만으로 2시간의 봉사활동이 인정되는 점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봉사활동 기록이 지속적인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동기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 주변의 쓰레기를 줍는 작은 봉사를 이어가는 일이, 나와 내가 사는 도시를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면, 조금은 억지일까.
다음은 아이들과 플로깅 활동 후 유튜브에 남긴 기록입니다.
https://youtube.com/shorts/EVijaU_l0gA?si=v7tmbZHwf9zk9v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