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에 인간의 가치
작년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낯선 친구가 내 책상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름은 ChatGPT라고 했다. 무뚝뚝한 듯, 묘하게 친절한 태도로 말을 걸어왔다. 그 뒤로 모든 게 바뀌었다.
어떤 순간부터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이 직접 글을 쓰지 않았다. 무언가 복잡한 계획이 필요할 때면 AI에게 명령을 내렸고, 그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정리되고 훌륭했다. 생각이란 걸 손에 쥐고 이리저리 굴려가며 하나씩 조립하던 시절은, 말하자면 낡은 라디오를 돌리던 때처럼, 추억이 되었다.
예전엔 창의적인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화가나 작가 같은 직업은 기계가 절대 흉내낼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아주 조용하고 매끄럽게 깨져버렸다. AI가 그린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고, AI가 쓴 소설 앞에서 감탄했다. “인간보다 낫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입에 올랐다. 창의성, 그 자랑스럽고 인간적인 단어마저 알고리즘 앞에서 무너진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생각을 맡기기 시작했다. 무거운 고민이나 복잡한 글쓰기는 더 이상 혼자서 끙끙댈 필요가 없었다. 클릭 몇 번이면 깔끔한 답이 나왔고, 사람들은 점점 스스로 사고하는 걸 멈추었다. AI가 모든 걸 정리해준다는 안도감 속에서 우리는 서서히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건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막지 않았다.
생각이라는 건, 언젠가부터 귀찮은 일이 되었다. 곱씹고, 엎고, 다시 세우는 과정을 견디기보다 우리는 외주를 주기 시작했다. AI는 그 일을 매우 잘 해냈고, 우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면 되었다. 책상 위에는 이제 노트 대신 모니터가 놓였고, 펜 대신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이건 아주 조용한 혁명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육체노동은 아직 살아남았다. 사람의 손과 몸이 필요한 일들은 아직 로봇이 완전히 따라오지 못했다. 지금만 놓고 보면, 생각보다 손발이 더 귀중한 시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유예일 뿐이다. 언젠가 AI가 육체를 가지게 될 것이다. 로봇은 두 팔로 짐을 나르고, 두 다리로 현장을 걷고, AI는 그 몸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실행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식도, 노동도, 몸도 모두 빼앗기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남을 수 있을까. 나는 가끔 그런 질문을 한다. 기계가 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 끝에서 항상 ‘경험’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직접 겪고, 몸으로 느끼고, 오감을 통해 체화된 어떤 것. 그건 아직까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물론 기술이 더 발전하면 언젠가 가상현실 속에서도 그것을 흉내낼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실제로 무언가를 만지고, 향기를 맡고, 아침 햇살에 눈을 찡그리는 그 느낌은 아직 인간의 것이라고 믿고 싶다.
변화는 곧 온다. 그리고 그건 매우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다시 정의해야 할 순간에 와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은 많지 않다. 대체불가능한 인간으로 남고 싶다면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 발로 걷고,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만 우리는 증명할 수 있다. 아직 기계로 대체되지 않은 무언가가 우리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그런 이유로 나는 요즘 한국방송통신대의 생활체육지도 수업을 듣고 수영을 매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바쁜 일상에 억지로 끼워 넣은 것도, 누군가의 권유 때문도 아니다. 단지 나 자신을 위해서다. 그것은 단순히 건강을 위한 것도, 새로운 자격증을 따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냥 몸을 쓰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땀이 흐르고, 근육이 뻐근하고, 숨이 차오르는 그 모든 감각 속에서, 내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지금 이 시대에 인간으로서 버티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화면 속 세계는 점점 정교해지고, 말 잘 듣는 AI는 나날이 많아진다. 하지만 여전히 아침 공기 속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조용한 체육관에서 맨몸 운동을 하는 그 시간만큼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그건 오롯이 나의 것이고,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준다.
AI가 거의 모든 걸 해주는 시대에, 내가 일부러 느리게 걷고,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하려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라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나는 아직 인간으로 남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