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가구의 이사에 대하여
2월 10일 아침 8시, 나는 묘한 기분으로 정리된 박스들과 흩어진 옷가지들을 바라보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박스 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손때 묻은 가구들, 작은 생활 소품들, 그리고 나와 함께 한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젯밤까지 분류하고 정리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쌓아 놓고 보니 짐들은 여전히 많아 보였다. 혼자 사는 사람치고는 짐이 많았다.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같은 대형 가전들도 있었고, 그동안 쉽게 버리지 못했던 자질구레한 물건들도 상당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과감하게 포장이사를 부르기로 했다. 다행히 회사 동료가 추천한 곳이 있어 망설이지 않고 계약했다.
포장이사 팀은 다섯 명이었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숙련된 사장님, 주방기기를 꼼꼼히 포장해주는 이모님 한 분, 그리고 침대와 가구, 기타 짐들을 옮기는 직원 세 명. 다들 연륜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처음엔 연세가 있는 분들이라 체력적으로 괜찮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능숙하고 노련했다. 그들은 마치 오랜만에 보는 연극배우들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고, 나의 짐들은 그들의 손길을 따라 순식간에 정리되어 갔다. 테이프가 힘차게 감기는 소리, 박스가 사뿐히 내려앉는 소리, 가구가 부드럽게 들어 올려지는 소리들이 공간을 메웠다. 불과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5톤 트럭이 짐들로 가득 찼다.
이삿짐을 싣는 동안, 집주인과 새로운 세입자가 찾아왔다. 젊은 신혼부부였다. 신혼부부인 만큼 들뜬 기색이 역력했지만, 젊은 여성의 엄마가 함께 와서 꼼꼼히 점검하며 신혼부부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벽에 남아 있는 미세한 자국까지 손가락으로 짚으며 관리 상태를 묻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하나하나 집을 점검하고, 보증금과 잔금을 정산했다. 휴대폰 화면 속 숫자들이 변하는 순간, 이곳에서의 내 시간이 마침표를 찍었다.
집을 떠나기 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마루에 남아 있는 자잘한 스크래치, 벽 한쪽에 희미하게 남은 자국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내가 살아온 흔적이 남아 있었다. 머릿속에서 지난 3년간의 기억들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늦은 밤 음악을 들으며 앉아 있던 소파,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던 창밖 풍경, 주말 아침 커피 향이 가득했던 부엌. 이 공간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새로운 곳에서는 더 좋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트럭을 먼저 출발시켰다. 그리고 나도 차에 올라 새로운 집으로 향했다.
새로운 집은 회사와 더 가까운 곳이었고, 양정에 위치한 동의의료원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기존 집보다 상당히 고지대에 있어 처음에는 차를 몰고 오르내리는 것이 낯설었다. 주변 동네는 오래된 주거지역이었지만, 최근 대규모 아파트 재개발로 인해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과거의 낡은 건물들과 새로 올라간 아파트들이 공존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아직 상권이 완전히 자리 잡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욱 활기를 띠게 될 것 같았다.
새 아파트는 반듯하고 깨끗했지만, 아직은 어딘가 낯설었다. 아무도 살지 않았던 공간 특유의 차가운 공기와,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새로운 동네의 소음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이사 온 세대가 많지 않아 단지는 기묘한 적막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조차 유난히 크게 들렸고, 복도를 걸을 때마다 발자국 소리가 메아리쳐 돌아왔다. 집주인은 이사 전에 입주 청소와 화장실 줄눈 작업까지 마쳤다고 했지만, 막상 들어서자마자 새집 특유의 냄새가 가득했다. 공사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고, 공간은 깨끗하지만 왠지 덜 정리된 느낌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곳에서 나는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갈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이 공간도 자연스레 내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집보다 더 넓고, 더 쾌적한 집으로 이사할 것이다. 다음번에는 수납공간이 넉넉하고, 설계가 효율적인 집을 고를 것이다. 그리고 이사를 마친 지금, 멈춰 있던 나의 일상도 다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약간의 번아웃을 겪고 있었다. 오랜 시간 업무와 일상 속에서 쉼 없이 달려오다 보니, 몸과 마음이 피곤함을 느꼈다. 이사를 앞두고는 모든 것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업무도, 운동도, 취미도, 모든 활동이 잠시 멈추었고 오직 이사 준비만이 나의 하루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러나 단순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떤 곳에서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사는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나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음에는 더 넓고 쾌적한 곳으로 갈 것인지, 더 조용하고 안락한 곳을 선택할 것인지, 혹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볼 것인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또다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을 날이 오겠지. 지금은 그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새로운 공간에 나를 맞춰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