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CDP를 추억하며
어느 날,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 들렀다. 예전 내 방, 저녁이면 오렌지빛 노을이 스며들던 그 방에서 오래된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때 내가 애지중지하던 네이비색 소니 휴대용 CD 플레이어, 그러니까 CDP를 발견했다.
손에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마치 오래된 바닷속에서 떠오른 작은 잠수함처럼,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기억 하나가 조용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새벽버스를 타고 가며 이어폰으로 듣던 음악들. 그리고 그 음악이 내 마음속에 펼쳐내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풍경들. CDP는 단순히 음악을 재생하는 기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의 풍경을 호출하는 장치였다.
기기는 겨우 작동했다. CD는 조금씩 튀었고, 리모컨은 사라졌으며, 외장 배터리 없이는 켜지지도 않았다. 문득, ‘새로운 CDP를 하나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인터넷을 뒤적였다. 하지만 소니는 이미 오래전에 CDP 생산을 멈췄다. 한때 첨단 산업의 상징이었던 그 기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이제는 이름 모를 중국산 재생 전용 CDP들만 명맥을 잇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MP3, 스마트폰, 그리고 스트리밍. 이젠 손바닥 안에서 수천 곡이 재생되는 시대다. 그런 세상에서 누가 CD 한 장을 넣고, 디스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릴까.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앨범들이 CD로 발매된다. 그걸 실제로 듣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은 단지 ‘소장용’일 것이다. CD는 더 이상 음악을 듣는 매체가 아니라, 기억을 보관하는 매체가 되어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은 LP가 다시 유행이다. 어딘가의 LP바에 가면, 누군가 흘러나오는 음악을 눈 감고 듣는다. 턴테이블 위로 바늘이 사뿐히 내려앉고, 사각거리는 소리가 흐른다. 한때 ‘아날로그의 한계’라 불리던 그 소리가, 지금은 오히려 따뜻한 온기처럼 느껴진다. 온갖 종류의 LP플레이어가 다시 생산되고, 누군가는 그것을 애써 찾아 듣는다.
그런데 CD는? 아직 그 열풍에 올라타지 못했다. 나 역시 LP플레이어를 거실에 두고 가끔 음악을 틀지만, 짧은 재생 시간과 큰 부피는 여전히 불편하다. 그런 순간마다, CD가 훨씬 간편한 매체였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지금 내가 가진 소니 CDP와 비슷한 기기를 중고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니,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까지 호가한다. 한때는 ‘음악을 듣기 위해’ 샀던 그 기계가, 이제는 ‘추억을 소유하기 위해’ 비싸게 팔리고 있는 것이다. 추억을 되살리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 그리고 그 추억이 되살아난다 해도, 예전 그대로일 수는 없다.
같은 음악을 다시 틀어도, 그 음악을 듣던 시절의 나, 그때의 감정, 공기, 사람, 향기 같은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추억은 재생될 수 있지만, 복원되지는 않는다.
그건 마치 오래전에 쓰던 향수를 다시 구입해 뿌리는 일과 닮았다. 분명히 똑같은 향인데, 기억 속의 그것과는 어딘가 다르다. 너무도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래서 추억이란, 그 자체로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꺼내보려는 시도와, 그로 인해 따라오는 공허함까지 포함되어야만 완성되는 기억의 무게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겼던 그 시절, 그 음악, 그 감정들은 되살릴 수 없다. 설령 되살릴 수 있다 해도, 그것은 상상 속에 존재했던 빛깔만큼 선명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처럼 지금 이 순간을 진심으로 살아내는 것이라는 걸.
소니 CDP를 거실 한켠에 꺼내놓았다.
가끔 재생 버튼을 누른다. 튀는 음색이 들려올 때면, 그 속에서 사라진 무언가를 조용히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