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그리고 꿈이라는 이상한 물건에 대해

만 10년간 회사생활을 하며

by 쥬드

아침이었다. 여느 때처럼 똑같은 출근길이었다.

늘 걷는 인도, 늘 마시는 커피, 늘 똑같은 음악 채널.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따라 험프백의 ‘친애하는 소년이여’가 흘러나왔을 때, 나는 잠깐 걸음을 멈췄다.


“꿈은 꾸지 않는 거야? 내일이 무서운 거니?”


노래 첫 구절이 그렇게 흘러나왔다. 나는 가만히, 멍하니 그 가사를 씹어 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내 꿈은 뭐였지? 나는 잘 살아온 걸까?

마침, 그날은 우리 회사의 신입사원 최종면접일이었다.
면접장 앞에 선 지원자들은 어딘지 어설펐다. 구겨진 셔츠 소매, 긴장으로 굳어버린 어깨, 마르고 쓴 입술.

그들을 보며 10년 전의 내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때의 나도 그랬다. 어설프고, 부족하고, 한없이 절박했다.


나는 20대 중반의 어딘가에서, 조금 멋지게 살고 싶었다. 그게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는 나도 잘 몰랐지만, 그냥 그랬다. 첫 직장은 생각보다 삭막했고, 나는 별 고민 없이 그만뒀다. 다음 직장은 쉽게 구해질 거라 믿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통장에 남아 있던 1년 치 월급을 들고 생애 첫 유럽여행을 떠났다. 낡은 배낭 하나, 두세 벌 옷, 낯선 도시들, 그리고 조금의 쓸쓸함. 쓸쓸함은 이상하게도 낯선 도시와 잘 어울렸다.

돌아와서는 막막했다.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어느새 잔고는 바닥을 드러냈고, 그 바닥을 보는 내 마음도 함께 내려앉았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그리고 나는 이 회사에 들어왔다. 어쩌면 우연이었고, 어쩌면 필연이었다.

처음 배치는 총무팀이었다. 회사는 낡았고, 사람들은 무뚝뚝했고, 사무실엔 종이문서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지금처럼 전자결재니 스마트워크니 하는 말들은 그저 미래의 얘기였다. 나는 구식 캐비닛을 열고, 도장을 찍고, 서류를 정리했다. 지루했지만, 이상하게 그런 일상 속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지루함도 익숙해지면 안정을 준다. 그건 꽤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1년, 2년, 3년… 시간이 흘렀다.
언제부턴가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예민함은 풍화되고, 불안은 무뎌졌다. 회사를 다니며 해보고 싶던 것들을 해봤다. 운동도, 사람도, 소비도. 그리고 어느새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조금은 낯선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회사는 많이 변했다. 새로운 얼굴들이 들어오고, 후배들이 늘었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떠났다.

예전엔 당연했던 불합리한 일들도 하나둘 사라졌다. 물론, 인간관계는 여전히 복잡했고, 회사란 여전히 어딘가 고단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그냥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세상은 늘 그렇게 굴러가니까.


7월 6일, 오늘로 딱 10년이다.
나는, 어쩌다 보니 이 회사에 10년을 다녔다. 그리고 다시, 처음 발령받았던 인사팀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말해, 대단한 성취도 없고, 특별한 영광도 없다. 그렇다고 실패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어느새 여기까지 떠내려왔다.


가끔은 생각한다.

나는 10년 전 상상했던 모습인가? 나는 아직 꿈을 꾸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꿈을 잊고, 현실에 매몰돼 살아가는 걸까?

그리고 내일은… 솔직히 조금 두렵다.
사람들은 모두 내일을 당연히 맞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나는 또 내일을 산다.
맥락 없는 대화들, 불안정한 인간관계, 쓸쓸한 도시의 풍경, 반복되는 업무.

그 속에서도, 가끔은 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이유 없이 먼 하늘을 바라본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가끔은, 정말 가끔은, 작은 상상도 해본다.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쯤 나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런 생각들은 대개, 잠들기 직전이나, 비 오는 날 오후에 떠오른다.
그리고 대개, 곧 잊혀진다.


아마 10년 후의 나는 또 생각할 거다.
‘그때, 더 용기 냈어야 했나?’
‘그때, 조금은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나?’

그리고 또 괜찮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살아가겠지.
꿈은 멀고, 현실은 가깝다.

내일이 무섭더라도, 그 무서움을 끌어안고, 그냥 걷는 거다.
조금은 비틀거리며, 가끔은 멈춰 서며, 그래도 걷는 거다.

그게, 인생이라는 낡은 소설의 페이지를 넘기는 방식이니까.
그리고 그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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