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의 아파트를 듣다가...
블랙핑크의 로제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발표한 솔로곡 ‘아파트’가 전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이 노래는 한국의 술자리 게임, ‘아파트 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해외에서도 우리나라 발음 그대로 “아파트”를 외치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신나고 경쾌한 분위기의 이 곡은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우리 사회에서 실제 아파트가 갖는 의미는 그보다 더 복잡하고 깊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
외국에서 아파트는 주로 젊은이들을 위한 저렴한 주거 옵션이거나 정부 지원 임대주택으로 인식되며, 사생활 보장 등의 이유로 선호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가 주거지 선택의 최우선순위로 자리 잡았고, 특히 도심 속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대한 선호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렇듯 외국에서 기피하는 주택 유형인 아파트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선호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1980년대까지 한국에서도 개인주택을 선호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노태우 정부의 대규모 공공주택 프로젝트가 시행되면서 100만 호의 아파트를 목표로 전국에 아파트가 대거 건설되었고, 많은 도시민이 아파트 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다. 당시의 아파트들은 획일화된 형태로 지어졌으며, 이는 급격한 경제 성장 속에서 대량 주거 공급을 위한 필연적 선택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통이 편리하고, 학군이 좋은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들의 가치가 상승했고,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공간을 넘어 재화이자 개인의 생활 수준과 생활 환경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정부는 도시 인프라 개선을 위해 민간 업체들의 아파트 재개발을 적극 장려했고, 이에 따라 아파트의 커뮤니티 시설과 주차공간 등 생활 편의성이 대폭 발전했다. 최근에는 대규모 커뮤니티와 고급 시설을 갖춘 신축 아파트들이 많은 이들의 동경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신축 아파트들은 입주민만 출입할 수 있는 전용 시설을 갖추고 외부인과의 접촉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 하나의 독립된 생활권을 형성하기도 한다. 일부 경우 아파트 내 학교에 입주민 자녀만 입학하는 시스템까지 도입되면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지가 아닌 집단의 결속과 단합을 강화하는 하나의 ‘이익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반면, 이러한 신축 아파트에 거주할 수 없는 사람들은 오래되고 위치가 좋지 않은 외곽 아파트나 임대 아파트에 살게 되며, 이로 인해 사회 내부에서 경제적 계층에 따른 주거 양극화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 아파트 종류에 따라 자녀들의 학교에서까지 차별과 구분이 일어나고, 이는 아이들에게 계급 의식을 학습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처럼 아파트에 따른 생활 수준과 사회적 계층 구분은 앞으로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높다. 재개발과 재건축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 신축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게 되고, 그 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외곽 아파트에 머물게 될 것이다. 인구 감소와 도시 집중화 현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어떤 아파트에 거주하느냐가 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과연 얼마나 투명하고, 동시에 속물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