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의 초입에서...
어렸을 때, 무성한 머리숱은 나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늘었다. 몇몇 사람들은 스치듯 내 정수리가 비어 보인다고 말하곤 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집안 곳곳에서 발견되는 머리카락이 점점 많아지면서 불안감이 커졌다. 탈모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니, 유전적 요인이 크다는 사실과 함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빠지는 머리카락에 대한 걱정이 커지던 어느 날, 나는 부산의 탈모 치료로 유명한 온천장의 병원을 찾아갔다. 토요일 아침 9시, 병원 문이 열리자마자 방문해 진단을 받았다. 두피를 초소형 카메라로 촬영한 결과, 아직 탈모는 아니지만 모발이 가늘어지는 초기 단계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초기에 병원을 찾은 것이 다행이라며, 매일 한 알씩 복용하는 유지용 약을 처방했다. 그는 이 약이 머리를 새로 나게 하기보다는, 기존 모발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처방전을 받아 들고 병원 로비를 나서며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탈모의 영역에 들어선 걸까?’
로비에는 약을 처방받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 병원이 탈모 약을 저렴하게 처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오리지널 약은 카피 약에 비해 몇 배나 비싸기 때문에, 비슷한 성분의 카피 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병원에서 나와 처방전을 손에 든 채 기다리는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 그리고 남편의 약을 대신 받으러 온 여성들을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라는 생각이 들며,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약국에서 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나온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이젠 청년의 시절을 지나 중년의 초입에 서 있다는 걸, 빠지는 머리카락이 물질적으로 증명해주는 듯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청년 시절을 후회 없이 살았는가?’ 돌아가고 싶은가 묻는다면, 지금의 내가 더 좋다. 비록 머리카락은 빠지기 시작했지만, 청년 시절의 막연한 불안과 희미한 미래보다는, 지금처럼 해야 할 일이 분명하고 삶의 궤적이 명확한 현재가 더 마음에 든다. 세월이 흘렀고, 그와 함께 나의 불안도 사라졌다.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지금은 내 인생에서 새로운 전환점이라 생각한다. 청년에서 중년으로 접어드는 이 시점에, 집을 새로 옮기고, 가족 구성원도 변화하며, 커리어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모색할 시기가 찾아왔다. 다양한 취미를 시도하고 운동을 하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나만의 삶의 균형을 찾아가려 한다.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겸손한 자세로 앞으로의 삶을 되새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