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살것인가?

부산에서 집구하기

by 쥬드

"2월 언제 이사를 가실 수 있으신가요?"

지난 11월,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 순간 당황했다. ‘어라,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 갑자기 왜 이사를 묻는 거지?’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곧 깨달았다. 전세 계약 만기가 내년 2월 말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 집주인의 연락을 기다렸는데, 정작 집주인은 조용히 부동산에 매물을 내놓고 있었고, 덕분에 낯선 중개인들로부터 “언제 나가실 거냐”는 불편한 전화를 받게 됐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동래에 위치한 4천 세대 규모의 브랜드급 신축 아파트 단지다. 2022년 전세 입주 당시, 헬스장·수영장·골프 연습장·독서실 등 갖가지 편의시설이 단지 내부에 조성되어 있어 마치 작은 도시가 아파트 안에 들어선 듯한 인상을 받았다. 옥외 조경은 사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선사했고, 분수와 휴게시설, 별도의 분리수거 시설까지 잘 갖춰져 있어 굳이 아파트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이곳에서 3년 동안 누린 독립 생활은 온전한 자유와 만족감을 내게 선물했다. 입주 당시의 감동이 어찌나 컸던지, 집들이는 무려 3개월이나 이어졌고 친구와 동료, 가족 모두가 찾아와 축하해주었다. 선물도 한아름 받았고, 집 안을 내 취향대로 꾸미며 매일같이 행복감이 차올랐다. 처음으로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워보고, 집 안 욕조에서 반신욕을 즐기며 “이게 바로 내가 바라던 삶!”이라며 스스로에게 기분 좋게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세입자는 결국 떠나야 한다. 집주인이 조용히 매매를 진행하면서, 이사 준비는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되었다. 출근한 사이 부동산 중개인들이 들락날락하며 집을 구경하고 가는 상황은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방문객들이 “갤러리처럼 꾸며놓으셨네요”라며 칭찬할 때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아이러니를 느꼈다.


11월부터 12월 초까지 회사 일이 바빠 직접 새 보금자리를 찾아다니기 어려웠다. 대신 네이버 부동산, 호갱노노, 인터넷 카페 등을 뒤져 후보지를 추렸다. 고려 기준은 네 가지였다.

매매냐 전세냐?

회사(서면)와의 접근성

주변 분위기와 주거 환경

재정적 한계 내의 합리적인 가격

최근 집값이 약간 내려 매매도 검토했지만, 주식투자 실패로 시드머니가 줄어들면서 선택 폭이 좁아졌다. 전세가격 변동도 크지 않아 고민이 깊어졌다. 결국 매매 후보로 ‘서면 아이파크 1단지’와 ‘이편한 시민공원(이시공)’, 전세 후보로 ‘래미안 포레스티지(온천장)’와 ‘자이더샵에스케이뷰(양정 자이)’를 골라 직접 둘러보기로 했다.


첫 번째 방문: 서면 아이파크 1단지(전포)

장점: 회사(서면)와 가깝고, 전포카페거리의 활기찬 분위기를 가까이서 즐길 수 있다.

단점: 고지대(고바위) 위치로 단지 내 층차(데크) 구조가 복잡하고 이동이 불편하다. 주변 술집들이 있어 저녁 시간대 소음이 우려된다.

5년 전 트렌드였던 베이지 톤 외벽은 세월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고, 뒷동으로 갈수록 일조량이 부족하며 주차면도 여유롭지 않았다. 매물 가격은 앞동 6억3천, 뒷동 5억8천 정도로 차이가 컸다. 단지 구조와 위치, 일조권 등이 가격 격차로 이어졌지만 이 정도 가격이 과연 합리적인지 의문이 들었다.


두 번째 방문: 이편한 시민공원(부전)

장점: 송상현공원 옆에 있어 도심 속 자연환경이 좋고, 2년 된 신축으로 깔끔한 외관과 알찬 커뮤니티 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변이 조용하고 동의과학대 인근이라 수영장 시설 이용도 용이하다.

단점: 마찬가지로 고바위에 위치해 있고, 단지 내 데크 차이가 커 이동이 불편하다. 합리적인 가격대 매물은 대부분 구석진 저층에 몰려 매력도가 떨어졌다.

인테리어와 환경은 나쁘지 않았지만, 가격대도 서면 아이파크와 비슷하거나 더 높았고, 굳이 이곳이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결국 매매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고 전세 후보로 눈을 돌렸다. 전세를 약 3억 선에서 맞추고, ‘래미안 포레스티지’와 ‘자이더샵에스케이뷰’를 둘러봤다.


세 번째 방문: 래미안 포레스티지(온천장)

장점: 올해 9월 입주를 시작한 신축으로, 1군 브랜드답게 고급스러운 조경과 커뮤니티 시설이 돋보인다. 현재 살고 있는 곳보다 업그레이드된 느낌을 준다.

단점: 회사와 거리가 멀고 주변이 온천시장과 유흥가 인접 지역이라 산만한 분위기다. 지하철역까지 거리가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가성비 좋은 전세 물건은 이미 다 나갔고, 남은 건 가격이 비싸 매력이 반감됐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만 전세 시세가 높아 가성비가 떨어졌고, 주변 환경도 매력적이지 않았다.


네 번째 방문: 자이더샵에스케이뷰(양정)

장점: 사전점검을 마친 신축이라 모든 시설이 새것처럼 반짝이고, 입주 시기라 전세가격이 비교적 합리적이다. 단지 상태가 훌륭하고 내부 시설도 기대 이상이다.

단점: 고바위에 위치해 있고, 지하철역에서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주변 도로가 협소해 향후 교통 혼잡이 우려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환경과 합리적인 전세가라는 매력이 컸다. 래미안 포레스티지보다 가성비가 훨씬 좋았고, 입주 시기도 적절해 바로 계약을 진행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네 곳을 모두 둘러본 후 최종적으로 ‘양정 자이’를 선택했다. 합리적인 전세가와 입주 시기, 깔끔한 단지 상태가 결정적이었다. 바로 부동산에 들러 인터넷에서 본 매물로 가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작성하고, 내년 2월이면 새로운 아파트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수영장과 3년간 쌓인 추억이 그리울지도 모르지만, 삶은 언제나 새로운 장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며, 다가오는 봄과 함께 한 단계 성숙해진 나만의 삶을 펼쳐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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