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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하나 걸었습니다

전수현 자작시 #11

by 다정다감 전수현

사진 하나 걸었습니다




마음속에 장만한


환하고 반듯한 벽


그곳에다 사진 하나 걸었습니다



'언제나 너를 믿는다' 하시던


아. 버. 지.







#시작노트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8년째 되는 해다. 아픈데 없던 분이 경운기 사고로 이별 준비 없이 떠났지만 내 마음에는 지금도 살아계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깜짝 놀랄 상황에서 "엄마야~"를 외치지만 나는 늘 "아버지~"가 먼저 나온다. 종교는 교회가 아니라 불교다.


아버지는 내 인생 가치관 형성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주신 분이다. 우리 집은 뒷동산이 밤나무 동산이다. 알밤이 떨어지는 계절에는 새벽부터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왔다.


우리 집 8남매 중 6번째인 나는 행동이 굼뜬 아이였다. 동이 트고 모두 주운 밤을 들고 와서 부모님께 많이 주웠다고 자랑할 때 나는 일어났다. 그때서야 밤나무 동산으로 혼자 나가는 나를 보며 엄마는 내 등에다 대고 "남들이 다 주워갔는데 이제 가서 뭘 줍느냐"라고 핀잔을 던졌다. 그러나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는 엄마 말을 쓸어 덮듯이 나를 향해 "가봐라, 지금 가도 네 몫은 있다"라고 하셨다.


아무도 없는 밤나무 동산에는 무수한 발자국이 나 있었다. 어두워서 알밤을 그냥 밟고 지나간 자리에 새 알밤이 또 떨어졌다. 아침 먹기 전에 돌아온 내 밤 그릇에 알밤이 형제들이 주운 밤보다 더 많았다.


아버지 덕분에 살면서 경쟁하지 않아도 내 몫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누구보다 잘해야 한다는 비교 없이 내 몫을 해 내고 있는 나를 본다. 잘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세상에 내 몫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나는 든든한 빽이 있다.


모두 아버지가 마음 중심에 계신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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