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에세이 5편
오가는 길은 늘 똑같았다.
일터로, 집으로. 늘 같은 길만 걸었다.
마치 프로그래밍된 로봇처럼,
그런데 어제는 조금 달랐다. 눈높이에 봄꽃들이 보이는 다른 길을 따라 걸었다.
나무 사이로 난 산책로는 길이 세갈레였다. 나무가 울창한 숲 길, 맨발로 걷는 황톳길, 반려동물과 나란히 걷는 길.
‘반려동물 친화 거리 도심 갈맷길’
이름도 예쁜 이 길이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던 걸까?여기가 우리 동네 맞나?
바로 집 옆에 이런 산책 길이 있다는데 놀랐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이 길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길가엔 봄이 가득했다.
매화, 산수유, 동백, 목련, 개나리, 민들레, 봄까치꽃, 벚꽃이 다투듯 피었다.
꽃들을 보니 반가운 친구 얼굴, 그리운 가족들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잘 있었어?”
나는 속삭이듯 꽃들을 불러보았다.
그 순간, 기억이 꽃잎처럼 흩날렸다.
낙동강 뚝에는 능수버들이 햇살아래 연둣빛 새 잎을 늘어뜨리고 봄바람을 타고 있었다.
그 길에서 어린 시절 학교 가던 길이 기억났다,
강원도 정선에서 한참 산속으로 들어간 동면 석곡리 대동국민학교 가는 길에도 봄꽃들이 지천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길가에 핀 민들레 꽃씨를 불어 날리고, 꽃잎을 따서 책갈피에 넣어 말리기도 했다. 능수버들 늘어진 개울가에서 돌을 던지며 깔깔대면 물고기들이 잽싸게 도망갔다. 그 시절에도 봄도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지금은 그 길도, 학교도, 친구들도 없다.
오래전 폐교가 된 학교는 돌아가신 부모님처럼,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지금 이 길을 걷다 보니 알 것 같았다. 쳇바퀴 속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나를 이끌었다는 걸, 그 덕분에 나는 힐링 중이다.
봄은 다시 오고, 꽃은 다시 핀다. 기억도 그렇다. 봄은 봄인데 똑같은 봄은 한 번도 없다. 봄은 새로 오고 꽃도 새로 핀다. 추억을 소환하는 꽃잎이 피어난다.
나는 두 시간 동안 봄과 길을 걸었다.
봄 속으로, 추억 속으로, 그리고 그리움 속으로.
“꽃이 새로 피듯, 기억도 새록하게 피어나네.”
나는 혼자 말을 했다. 꽃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마치, 오래된 기억이 나에게 “그래, 잘 있었어.”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그리움을 피우는 봄 꽃길 끝은 상담실과 이어져 있다. 오늘 상담 첫 내담자는 유년의 나였다.
4월 초에 쓴 글을 저장해 뒀다. 왜 그랬을까?
벌써 창밖에는 녹음 짙은 나뭇잎이 바람을 탄다.
2025년 봄을 배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