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과거에 대한 원망을 위한 글이 아니며, 나를 드러내고 수용하기 위한 과정의 글쓰기로 봐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몸이 매우 허약하여
병이란 병은 다 달고 살았었다.
극도의 허약체질 그러면서 국민학교 저학년때부터
혼자 버스, 택시타고 병원에 다니며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왜 혼자 병원에 가야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가 같이 갈 때도 많았지만 혼자가는 날도 많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주는 척이라도 하는
유일한 의무사항인 자전거타기, 수영, 캐치볼, 축구 등...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고,
해본 적도 없고 함께 놀인터나 학교운동장 한번 간 적이 없다.
바다에 한 두번 갈때도 절대 물에 들어가지 않고
짜증만 내다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 분은 분노의 화신이었다, 적어도 내가아는 수십년간은...
아직도 나는 여전히 자전거도 탈 줄 모른다.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것은 매우 불편했다.
누구와도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고.
더 커서는 자전거를 못탄다고 이야기도 못하고,
나이가 든 이후에는 아예 배울생각을 하지 못했으니까....
그시절 아버지가 무서워 무엇을 요구한 적도 많이 없었지만
무엇인가 요구하고 물어보면 불쑥 나오는 답은
“쓸데없는 짓”
이라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왜 쓸데없는 짓을 자꾸 물어보고 요구할까
라는 생각은 아예 입을 닫게 만들어 버렸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무섭고 쓸데없는 짓을 생각하는
나는 어쩌면 아버지 당신에게는 귀찮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둘도 없는
좋은 아버지, 할아버지로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지금은 아들과 캐치볼도하고, 같이 산책하고
카페가서 책도읽고, 인터넷게임, 닌텐도게임도 하고,
자전거도 가르치고(나는 탈 줄 모르지만 가르칠 줄은 안다. 유튜브에서 배웠다),
수영도 가르치고 나름 내가 받지 못했던
내 초등학교 시절에 느꼈던 남들한테 소외돠고,
위축되는 감정을 아이가 똑같이 느끼지 않도록
나름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러다보니 나도 같이 대리만족감이 들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준 것 같다.
그래서 그 당시의 내 유일한 취미는
싸구려 프라모델 만드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다.
비싼 것은 사지 못한다.
조금씩 모은 돈으로 사는 싸구려 프라모델
사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짓이니까.
어느날인가 요구한 적도 없고 읽고 싶지도 않았던 책을
전집으로 사오신 적이 있다.
내가 잘 안읽는다고 정기적으로 찢어 던지시는게
아버지의 또 다른 취미 중 하나이다.
난 그 책은 단 한권도 읽지 않았다.
다 찢을 때까지 기다리려 했는데 어느날인가 모두 버려지고 없었다.
내 유일한 소심한 반항이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책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는 그런 아이였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책이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한해서다.
이런 점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