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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드러내기, 나를 수용하기
08화
다시 돌아와서..마음의 처방이 필요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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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 엉망
Nov 23. 2025
그렇게 1년, 2년 보내다 무슨바람인지
급 공부를 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싶었다.
어쩌면 벗어나고 싶었었는지도 모르겠다.
1년은 정말 미친 듯이 공부했다.
갑자기 아버지는 저녁때마다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나를 데리러 왔다.
왜 왔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꾹 입다물고 달달거리는 차를 타고 집으로 오곤 했었다.
뻔하다. 있는 재산은 모두 날리고 엄마랑 장사는 시작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고, 왠지 미안한 맘이라도 들었을까,
지금이라도 아버지 노릇을 하고 싶으셨을까.
그렇다고 대화가 있거나 부자간의 무언의 정 같은 것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부모자식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상황이 계속되며 어색한 하교시간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결국 가고 싶은 과는 아니었지만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재수가 좋았다고 해야겠다.
나에게도 재수가 좋은 날이 있을가 했는데 역시나
그 또한 불행의 서막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예상했었지만 결국 집을 떠난 대학생활은 한걸음 한걸음
내쉬는 숨 한마디 한마디 마다 돈이었다.
당연히 있어서 문제가 아니었다. 없으니 그 때부터 문제였다.
역시 대학교 학비와 생활비, 방세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니 당연 한 것이지만 나한테는 상상을 초월한 금액들이었다.
집에서 장사를해서 버는 돈은 먹고살고 동생 학교 보내기도 빠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대학을 가겠다고 공부한 것에 대한 후회가 몰려왔다.
교재는 도서관에서 겨우 겨우 참고해야했고,
팀별과제는 같은 과 애들한테 언제나 민폐였다.
주눅든 내 대학생활은 집에서의 생활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부쳐오는 돈은 방세를 내고 나면 밥은 포기 하고
라면정도 사다 보관 할 정도 였던것 같다.
그 돈으로 먹고, 꼭 사야되는 책을 사고나면 어쩔 수 없이
하루에 한끼 정도만 먹게 된다. 의도치 않은 다이어트?
풉..별로 웃기지는 않다. 그때는 배고픔이 정말 서글펐다.
그 이상 먹으면 그냥 학교를 안다니는것만 못하니까.
라면하나를 끓이면 최대한 불려서 먹곤 했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배가 덜고프니까..
그럼 조금이라도 더 버티고 돈을 아낄 수 있으니까..
나는 라면을 먹을 때 덜익은 꼬들꼬들한 라면만 먹는다.
불어터진 라면은 나에게는 배고픔이라는 의미였기에
학교를 가기는 했지만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아르바이트는 왜 안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일을 하기에는
그 당시의 내 심리적 상황으로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항상 주눅들어있고 불안과 우울로 충만한 내 상황으로는
사람만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처음으로
집을 나와 생활하는 나에게는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는 대학생활의 낭만과 재미는
그저 영화나 드라마의 이야기였다.
더구나 온수가 나오는 집은 그 돈으로 구할 수도 없었다.
먹고, 자고, 씻는 것 부터가 스트레스의 시작이었다.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이 되면 보일러가 없는 방에서의
겨울나기가 시작되고 입어도 입어도 비집고 들어오는 냉기와 한기가
주눅든 맘을 더욱 주눅들게 만들었다.
어느새 부터인가 학교를 안가기 시작했다.
와보니 내가 있을 곳은 아니다라는 판단이 들었고
이번 학기 까지만 다니고 그만 두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학점은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그냥 누워 잠자다 일어나 천정만 한참 바라보다 천천히 씻고
느즈막히 따듯한 히터가 나오는 도서관으로 가서
읽고 싶었던 책들을 쌓아놓고 읽기 시작한다.
배고픔도 별로 못느낀다. 별로 움직이지를 않으니.
그 때 나를 위로해주었던 책이 이외수 작가의 책들이었다.
벽오금학도, 들개, 꿈꾸는 식물, 겨울나기 등등 나에게는
이외수 작가의 문장하나하나가 모두 위로의 문장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신비의 족자를 발견해서 찢어진 족자속의 빛속으로
그 오학동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날도 있었다.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그러다 방학이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특별히 다를게 없는 과거의 삶으로 돌아갔다.
기대와 희망이 주는 고통과 고민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포기와 절망이라는 깨달음을 맘깊이 새겨넣었던 결정적인 시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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