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과거에 대한 원망을 위한 글이 아니며, 나를 드러내고 수용하기 위한 과정의 글쓰기로 봐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그렇게 그냥저냥 중학교 시절이 지나고
나름 성적도 중위권은 유지해서
고등학교에무사히 입학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지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얼마 후에 알았다.
(내 나이는 어렸지만 기억이 있을 무렵부터는 숟가락을 들때도 눈치로 분위기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나의 감정센서는 성능이 매우 뛰어났다)
아버지가 주식투자를 나름 크게 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주신 재산을 다 공중으로 날리셨다는걸.
항상 저녁시간이면 그 날의 주식현황을
들어야하는 날이 많았다.
여전히 듣건 안 듣건 그건 중요치 않다.
당신이 하시는 일이 있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는데 다른 이야기라도
꺼낼라치면 구겨지는 얼굴과 커지는 목소리에
우리는 조용히 밥을 먹어야 했다.
어머니는 집안에 벌이가 없으니
청소일을 하러 다니셨다.
돈 이야기라도 하는 날엔 돈 벌어온다고
유세 떤다고 손찌검, 상엎기...
개버릇은 어떻게도 없어지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대출에 잡힌 유리창깨진 집 한채와
얼마인지 모르는 종이쪼가리 주식.
고등학교 때는 내 성적은 하락세.
결국은 아버지의 선전포고가 있었다.
그 성적이면 대학에 안 보낸다.
웃음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대학입시 제도 조차도 모르는 분이
어디서 학교이야기는 들어가지고 우리집 돈에 인 서울?
어머니 청소일로 겨우겨우 사는 집에서 인서울 대학?
어떻게 이런 상황을 만들고
아이들은 어디 서울대라도 장학생으로
가기를 바라셨는지 정말 사고 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청소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어머니는
어느샌가부터 소주병을 하나둘 비우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취한 상태로 내옆에 앉아서
“너 때문에 산다”
그 말을 하루도 안 빼고 들었던 것 같다.
자면서 듣는 그 말은 너무 화가 났었다.
자는 것도 아니었다.
들어와서 술주정하며 우는 모습이보기 싫어서 억지로 자는
척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게 아닌데
나도 기분좋게 살고 있는게 아닌데
겨우겨우 버티면서 살고 있는데.
그래서 결국 속에 있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했다.
“이혼하세요 제발"....
어머니따라 갈테니까 이혼하세요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그냥 저하고 동생하고 셋이서 살자고
이야기를 수십번 했지만 어머니는 매일매일 술에
취해 너 때문에 산다고 하시면서도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 날 생각은 하지를 못하셨던 것 같다.
어머니, 아버지가 다 계시면 정상적인 집안에서
자란 것으로 착각하신 것 같은데
그 결과 어머니의 고생문은 너무 활짝 열려 한 동안 닫힐 줄 몰랐다.
결국 주식으로 집까지 다 날리고 나서야
결국 항복선언을 하셨다.
결국은 빚만 남은 패잔병으로 불쌍한 척
다시 남은 가족 곁으로 조용히 다가오신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는 장사를 시작하셨다.
평생 장사며 회사도 다닌 적 없는 아버지가
적응을 하셨을리가 만무하였다. 사장님 흉내나 낼 줄 알지.. 거지사장....
결국은 어머니가 2차 고생문을 또 열고 말았다.
그때부터는 나도 신경을 끊었다.
어쩔것인가. 그렇게 이혼하라고 애원했건만
선택은 부모님이 하신 것. 나도 이젠
살아야겠기에 오직 내 감정에만 충실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것도 해본 사람이 한다고
평생을 눈치보고 비유맞추며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사람이 내 감정을 위하여만 살아간다는 것은
맘 먹은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 샌가 5mm문틈은 테이프로 막아놓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느날 갑자기
테이프로 막아 놓은 것 같다.
더 이상은 쳐다보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