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과거에 대한 원망을 위한 글이 아니며, 나를 드러내고 수용하기 위한 과정의 글쓰기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 항상 오후 4시 30분이 지나서 5시경이면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오셨다. 그 날 기분은 언제나 정확 하게 알 수 있었다.
일명 증권사 전문투자자......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다. 1천만원 잃고 백만원 수익이나면 좋아서 날뛰는 도박쟁이와 다를 바 없는 삶을 봐왔으며, 종목에서
수익이 나는 날은 그 간의 손해도 기억못하고 바이폴라 환자 처럼 세상 신난 어린이었고 듣는 사람이 있건 없건 설명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난 그냥 오늘은 화 안내고 집어던지지 않고 엄마에게 화풀이 하지 않아서 좋을 뿐이었다, 아주 잠시 좋은 아빠인 것처럼 생각하는 줄 알았을 것 같은데 .. 혼자만의 큰 착각이지만 그 착각을 깨기는 싫었다. 그래야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버린 내 고통뿐인 삶의 하루라도 무사히 조용히 지워질테니까. 적어도 그 당시의 생각은 그랬던것 같다.
나는 뭐든 궁금한건 혼자서 해결했다. 중학생이 되니 콧수염이 거뭇거뭇해서 면도를 해야하는데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혼자서 겨우 일회용 면도기를 사서 여기저기 베이며 면도하고 중학교에 갔고, 학원이나 다른 뭔가를 배우러 다녀본 적도 없다.
그 흔한 미술, 피아노, 영수 등등 아무것도 다녀본 적이 없다. 부모님은 자랑이다.
우리애는 학원 한번 안가도 공부 곧 잘 한다고..왜 잘했을까...
나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너무 가슴이 아픈건 한번도 생일날 케익을 사서 촛불을 꺼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 반백이 넘은 지금도 가장 싫어하는 날이 생일이다. 어머니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린적도 있다고 지금도 자랑을 하시지만, 나는 친구들과 같이 하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다.
케익은 나에겐 유치하고 부모의 정성을 알아주지 않는 아들의 바램이었고, 그래서 지금도 가장 혐오하는 음식 중 하나가 케잌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