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에 써내려간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들.. 어느순간 20페이지가 넘는 조각들이 있었다. 그 조각들은 먼지를 털어내고 한조각씩 맞추어보니 파편이 아닌 커다란 돌덩어리가 되어 나의 불안과, 초조함, 무기력그리고 절망과 포기의 부조를 이루어 가고 있었다.
누구의 탓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내가 그때로 다시 가본다 한들 그 상황을 바꿀 수 있었을까? 그 시절에
나 또한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노력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았으며 그런 노력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는 순간 절망과 포기 그리고 무기력으로
점철된 시간을 시작하게 만들었으니
지금와서 그래 그때를 다 인정하고 다 잊고나면 지금의 불안과 공황 그리고 불면의 시간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헛된 생각도 한번 해봤지만, 인정하고 잊으려고 할 수록 다시 기억의 원점으로 돌아가고 그 시절의 나를 누가위로해 주든 그 시절의 나는 없으며
그런 기억의 부조를 만들어내게 해준 환경들 또한 지금은 그런 기억이 없이 평안한 삶을 살고 있으니, 결국은 나만의 문제로 남는 것이다.
그 동안 쓴 글들을 다니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님께 보여드렸다. 2주가 지나고 다시 진료일이 되어 병원에들르니 상담이 길어질 것 같다며 조금 기다렸다가 진료를 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시작된 상담과 진료...첫마디는
"왜 자서전을 썼어요?" 라는 질문이었다.
그 동안의 진료과정에서 한번도 듣지 못했던 지금의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직접 물어보셨다. 그래서 나도 대답했다.
"잊어버릴 까봐서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답을 잘 한 것 같다. 구질구질한 이유를 만들어내느니 자서전을 쓰게된 근본적인 이유를 말씀드리는게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물으셨다.
"왜 굳이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나는 그 대답이 한참 걸릴 줄 알았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바로 답변이 튀어나왔다.
" 잊으려고 하면 잊을 수 있는게 있었습니까?"
살아오면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각인된 기억은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더라도 친절하게도 어떤 계기가 되면 생생하게 재생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글을 쓰다보니 지금의 상태에 대한 어떤 해결책을 찾으려고 쓰는 것이 아니었다.
슬프고, 무섭고, 창피했고,자존감 무너지던 그 기억에 대한 누군가와의 이야기가
필요했던 것 같았다.
원장님과 공유했던 그 시절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하고나니 해결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한 번도 한 적 없었던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 기억에 대한 원망과 절망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고, 다른 누군가에게도 이야기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당장의 어떤 증상에 대한 해결은 기대하지 않는다. 매일 약을 먹고 버티고 있는상황에 대한 원망도 없다. 다만 남아있는 나의 이야기를 다 해주고나면 더 이상 해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