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하나의 시점에 국한되는 사건이 아니다.
행복은 과거까지 닿아 있는 긴 꼬리를 갖는다."
이러한 명제는 반대로도 이야기 할 수있다.
"불행 또한 과거까지 닿아 있는 긴 꼬리를 가지고 미래까지 연결시킨다."'
행복에 대한 미래성 보다 불행에 대한 미래성이
우리의 삶에 더 강한 영향을 주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행복이 없는 삶보다는 불행한 삶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이 더 큰 것 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즉 행복과 불행은 모두 서사적 요소를 필수로하며,
모두 인간(Human Race)의 기억의 기본이 되는 요소이다.
우연성만으로 이루어진 사건의 총합인 삶에는
행복과 불행은 있을 수 없다. 단지 사건만 있을 뿐.....
"인간은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이동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실존은 출생과 사망 사이의 전체 시간에 걸쳐 있다.
존재의 맹목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살아가는 시간 동안
자기의 이야기로 채워가며 그 이야기를 표상으로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존재의 지속성은 자기의 지속성에 의해 보장된다.
즉 파편화된 기억과 시간이 아닌
연속되고 지속된 기억과 시간에 의해서만
우리의 존재가 설명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화는 시간적 연속성을 가지지 못하는
나노단위의 정보로 부서진다.
정보는 반응자의 놀라움의 자극으로만 가치를 가지며,
머무름을 허용하지 않으며 부정도 허용하지 않는다.
단지 순간의 무시(Passing)와 좋아요(Like)만이 의미를 가질 뿐이다.
디지털 플랫폼의 스토리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서사성을 가진 스토리라고 볼 수 없다.
포착된 순간에 대한 시간적인 나열과 엮음이며
빠르게 사라지는 시각적 정보의 자극에 불과하다.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ce)는
일시적 실제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순간에 예속된다."
포토사피엔스(Phono Sapience)에게는 시간성을 가진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디지털 플랫폼은
이야기의 매체가 아니라 정보의 매체라는 것이다.
서사적인 맥락없이 나열된 이벤트의 합이며
이는 시간성과 연속성을 가진 이야기를 나타내지 않는다.
잠시 머물다 가는 이벤트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을 위한 플랫폼으로
사용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인간의 기억은 선택적이며 그러한 이유에서
망각과 서사적인 이야기로 기억이 작동된다.
그렇지 않다면 데이터의 기록에 불과할 것이며,
이는 빠짐없이 저장되는 일련번호가 부여된
사건의 집합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한 데이터의 철저한 기록은 결국 디지털 파놉티콘"
파놉티콘(원형감옥으로 중앙 감시탑에서 모든
수용자를 감시하지만 수용자는 감시자의 존재를 알 수 없어
스스로를 통제하게 만드는 구조)으로 이루어진
감시사회를 불러올 것이며,
무의식 중에 우리는 사용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정보를 제공당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기록 안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다."
경험한 모든 것을 빠짐없이 재생할 수 있다면
엄밀히 말해 더 이상 기억은 불가능하다.
기억에는 필연적인 망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기록이 나열되는 것이라면 이는 기억이 아니라 기록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결국 데이터의 완벽함은 투명사회를 벗어난
감시사회를 불러오게 될 것이며,
우리는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느낄 수 없게 되어
열심히 자신의 정보를 기록하고
공유하는데 혈안이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및 인용
(1) 한병철 <서사의 위기 >(다산북스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