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존재

by 글씨가안엉망

소유적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에 의존한다.

재산, 지위, 명예, 학력, 인간관계와 같은

외면적 조건과 소유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한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안전해질 것이라 믿고,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한다.

하지만 소유는 언제든 빼앗길 수 있고,

무너질 수 있으며,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상대성을 가지게된다.

그래서 소유에 기대는 삶은 끝없이 불안할 수 밖에 없다.

"가진 것 = 나 자신" 이 되기 때문이며

그 또한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적 인간”은 다르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가보다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집중한다.

자신이 지금 여기에서 살아 숨 쉬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존재 자체가 곧 의미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존재적 인간은 결과가 보장되지 않아도,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없어도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다.

소유에서 자유로워진 생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유는 축적의 논리이지만, 존재는 생성의 논리다.


우리는 종종 풍요로움을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한다.

현실적으로 이는 부정 할 수 없는 점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더 넓은 집, 더 많은 돈, 더 높은 자리를 얻으면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소유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불안과 걱정을 떠안는다. 이는 어쩌면 균형의 문제도 될 수 있다.

소유가 없이는 존재도 없기 때문에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반대로 존재의 깊이를 키울수록 우리는 덜 두려워진다.

가진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가 나를 지탱하기 때문이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 인간세계에 존재하는 사물 중에 혈안이 되어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 하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사물을 무가치하다고 단정하는 말이 아니라,

사물에 집착하는 태도의 허망함을 경고하는 말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남에게 과시할 수 있는 것에

몰두하는 순간 우리는 본질을 잃는다.

사물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존재적 인간이라고 소유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소유에 종속되지 않을 뿐이다.

그는 돈을 벌 수 있지만 돈으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고,

성공을 이룰 수 있지만 성공에 매달리지 않는다.

그는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적 기준에 따라 살아간다.

그리고 그 기준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질문은 끊임없는 성찰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오늘날 우리는 소비와 성취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더 많이 소유하라는 더 높은 성취를 달성하라는 압력은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진정한 풍요는 오히려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많이 소유하는 기술이 아니라,

풍요롭게 존재하는 법이다.

풍요롭게 존재한다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진심으로 공감하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표현하며,

실패와 불확실성 속에서도 스스로를 신뢰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가치는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존재의 깊이에서 나온다.

소유는 나를 둘러싼 외피이지만, 존재는 나의 중심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1, 참고문헌 :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프롬 : 까치,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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