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종교적 권위는 절대적이고,
사회적 권위는 합리적 합의에 기반한다고 말한다.
얼핏 보기에 이 구분은 명확해 보인다.
종교는 초월적 진리를 근거로 하여 변하지 않는 권위를 주장하고,
사회는 제도와 계약, 다수의 동의를 통해
권위를 형성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 구분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모든 종교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종교적 입장에서의 권위는 신적 계시에 근거한다.
신의 말씀은 인간의 판단을 넘어서는 궁극적 기준이 된다.
이런 점에서 종교적 권위는 ‘절대적’이라는 성격을 띤다.
그러나 이 권위는 원칙적으로 자발적 복종을 전제로 한다.
믿기로 결단한 개인은 스스로 복종을 선택한다.
만약 그 복종이 내적 확신과 윤리적 성찰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맹목적 종속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헌신일 수 있다.
이 경우 종교적 권위는 인간을 위축시키기보다
오히려 도덕적 성숙과 공동체적 책임을 촉진한다.
반면 사회적 권위는 대개 합의와 절차를 통해 형성된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동의를 권위의 정당성으로 삼는다.
법과 제도는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비판과 수정이 가능하다.
이러한 구조속에서 권위는 본질적으로 잠정적이며,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사회적 권위는 합리적 토론과 집단적 판단에
기반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사회적 권위가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제도적 외형을 갖추었더라도, 그것이 비판을 억압하고
권력을 집중시키며 두려움을 통해 유지된다면,
그것은 합리적 권위가 아니라 강제적 권위 또는 권력에 가깝다.
역사 속 전체주의 체제는 사회적 제도를 갖추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공포와 복종에 의해 유지되었다.
이 경우 권위의 근거는 합의가 아니라 힘이었다.
결국 종교적 권위와 사회적 권위를 가르는
결정적 기준은 ‘영역’이 아니다.
초월적 근거를 가졌는가,
제도적 합의를 가졌는가 하는 문제는 본질이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 권위가 인간의 자유와 성장을 확장하는가,
아니면 의존과 복종을 영속화하는가? "
합리적 권위는 자신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그것은 질문을 허용하고, 성장을 목표로 하며,
언젠가는 스스로를 넘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
반대로 비합리적 권위는 끊임없이 자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비판을 위협으로 간주한다.
전자는 인간을 자립하게 만들고,
후자는 인간을 종속 상태에 머물게 한다.
권위의 정당성은 그 출처가 아니라
그 작동 방식에 의해서 결정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절대성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을 위축시키고 질문을 금지하는 모든 형태의 권위일 것이다.
권위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위에 군림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진정한 권위는 자신에게 복종하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데서 그 의미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