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죄인가? 고통의 마지막 처방인가?
회피를 위한 마지막 선택지인가?
그 선택은 삶의 주체로서의 권리인가?
아니면 사회적-도덕적 합의의 문제인가?
삶에 대한 권리의 주체는 나인가?
아니면 내 육체인가?
나는 육체인가? 정신인가?
아니면 정신이 존재하는 육체인가?
살아있으되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어떤 판단의 기준이 필요한가?
육체의 기능상실? 인격의 상실?
어떤 것이 되었던 온전한 ‘나’의 존재로서의 가치의 소멸인가?
판단의 기준은 내가 나를 판단하는 기준 인가?
남이 나를 판단하는 기준인가?
아니면 사회적 합의에 의한 구성원의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인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존엄사 선택한다면 나는 육체를 죽이는 것인가?
정신의 존재를 소멸시키는 것인가?
정신이 깃든 육체를 함께 소멸시키는 것인가?
어떤 선택이든 결국 나의 선택이어야 한다.
그것은 온전한 나로서의 삶이어야 하며,
삶의 주체로서의 권리이자 의무의 행사로
공감대가 형성된 도덕적 행동으로서의 하나이어야 한다.
물론 온전한 나로서의 삶이라는 것에 또 다른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그것은 제삼자의 판단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온전히 스스로의 자기에 대한 존엄의 기준을 가진 가치판단에
의지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지금 언급되어지는 주제는 과거만큼의 금기사항은
아닐 수 있지만, 아직 누구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이며,
감히 언급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만은 사실이다.
많은 매체에서 화두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결론은 내릴 수 없는 이유는
온전한 스스로의 자기에 대한
가치판단의 결과가 과연 사회적 공감대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도덕적인 행동의 한 가지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인 것 같다.
존엄성과 인간성의 자유가 없는 삶은 지향점에서 벗어나 있다.
태어나는 순간 이미 삶은 죽어가는 과정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논리나 이유도 있을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자기의 선택이다.
그 선택은 마땅히 존중되어져야 한다.
누구의 몫도 아닌 내 몫의 삶이기에 내가 마지막의 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함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흔히 이야기하는 보통의 삶에서 이러한 선택이 부정되어지고
비난받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자기의 주변인과 자기의 선택이 아닌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 세상에
태어나게 되어버린 가족이 안고 가야 하는 트라우마와 상실감 그리고
슬픔일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나의 판단과 선택을 부정할 것인가?
살아있는 동안 평생인가?
아니면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을 때 인가?
지금 같은 초고령화 시대에 더 이상 존엄한 인간성과 인격의 보장이
되지 않는 삶의 한계에서 선택 할 수 없다면, 내 인격과 존엄성은
중환자실의 생명유지장치가 대신해 줄 것인가?
내 선택이 누군가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고민되어지고,
비참하게 잘려 내장을 질질 끌며
지나가는 인생을 살아야 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결정에 대한 대가가 아닌
남이 나에 대한 결정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든다.
존엄은 누군가의 동의로 완성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동안 나의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그때 정말 진지하고 존재하는 동안의
가치를 찾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