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성과 이타성 그 사이에서
이타적-이기적 본능
인류사에는 왜 고도의 사회성이 존재하며
고도의 사회성을 존재하게 한 원동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흔한 명제 속에는 놀라울 만큼 많은 질문들이 숨어 있다.
왜 인간은 혼자가 아닌 ‘함께’를 택했는가?
우리는 협동하며 살아가는 존재인가, 아니면 협동하는 척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각각의 주어진 삶을 살아가도록 본질이 정의되어진 존재인가?
하지만 문명은 우리에게 사회성을 형성시켜왔다.
아니, 사회성을 ‘본능’처럼 느끼도록 우리를 진화시켰다는 편이
더 적합한 표현일 수 도 있겠다.
우리는 본능의 요구에 좌지우지 되는 지능에 의존해 살아가는 진화적 키마이라
진화는 오랜 시간 동안 두 개의 상반된 본능을
우리 안에 함께 남겨두었다.
이기성은 자기 생존을 위한 본능이고,
이타성은 타인의 생존을 도우며
자신의 유전자를 우회적으로 남기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기성만이 주목받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타인을 배려하거나 희생하는 본능은
종종 "이타적인 척"이라는 냉소 속에 덮인다.
마치 이기성만이 진짜 본능이고,
이타성은 사회가 요구한 ‘교양’이나 ‘위선’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이것은 과연 진실일까?
아니면 우리가 이미 어떤 ‘가면’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일까?
우리는 가면을 쓴다. 누구나 그렇다.
하지만 이 가면은 하나의 가면 뒤에 '이기성과 이타성'이라는
두 개의 얼굴로 나뉘어 있다.
본능에 대한 가면은 결국 하나다.
그것은 생존이라는 본능의 형태를 바꾼 것일 뿐이다.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우리는 모두 살아남기 위해 그 역할을 선택하고,
그 방식에 맞춰 자신을 조율해온 것이다.
결국, 고도의 사회성이란 생존 본능의 가장 정교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었던
이기적-이타적 유전자의 역할이
지금의 고도의 사회성을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그것을 도덕이라 부르고 공동체라 칭한다.
그리고 우리가 쓰고 있던 가면은 도덕과 공동체로
변화된 사회성으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