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1. 빼빼로 데이 아니죠, 영령 기념일이죠.
우리나라에서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도 학창 시절 친구들과 빼빼로를 주고받고 남모르게 짝사랑에게 빼빼로를 선물했던 추억이 있다. (아내가 이 문장을 봤다면 나는 곤란해질 수 있다.) 그러던 중 대학생 때 11월 11일이 빼빼로데이보다는 농업인의 날로써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각자의 시각에 따라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우선순위가 있는지는 다를 테니 그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겠다.
하지만 나는 11월 11일을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보고자 한다. 나라마다 다를 수 있지만 서유럽에서는 1차 대전이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2차 대전보다도 1차 대전이 더욱 그렇다. 사상자 규모를 비교했을 때는 2차 세계대전이 압도적이지만 전쟁의 잔혹성, 영향력을 고려하면 1차 대전이 2차 세계대전보다 더 큰 이벤트였고 이는 곧 2차 세계대전을 잉태하는 씨앗이 되었다.
*자꾸 미루고 있지만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에 또 다루도록 하겠다.
1918년 11월 11일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이다. 이 날을 기념하여 영국에서는 Remembrance Day라고 한다. 우리로 따지면 현충일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영령 기념일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등의 영연방국가 그리고 몇몇 유럽 나라에서도 11월 11일을 특별하게 기린다. 11월 11일이 평일일 경우 그전 일요일에 국가적 규모의 추모행사를 치른다. 하이드파크 인근에 있는 로열 알버트 홀에서는 국왕이 참석한 기념식이 열린다.
이때 놀랐던 것은 영연방 국가에서는 추모의 꽃이 양귀비라는 것이다. 서양사보다 동양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 이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아편 전쟁으로 동양을 침략한 영국이 전몰장병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양귀비 꽃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 유래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플랑드르 지역에서 복무했던 캐나다 군의관이 전쟁으로 초토화된 땅에서도 양귀비가 강인한 생명력으로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플랑드르 들판에서"라는 시를 썼고 그것이 나중에 미국에 전해져 모이나 마이클 교수가 추모의 의미로 붉은 양귀비 꽃을 달고, 프랑스에서 자선행사 중 양귀비 꽃 모형을 파는 것이 정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앞서 말한 로열 알버트 홀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가장 압권은 행사 말미 침묵의 2분이다. 마지막 연사가 We will remember them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외친 뒤 청중들은 We will remember them이라고 화답하고 일과 종료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그 나팔 소리가 끝나 갈 때, 2분 동안 침묵이 흐르며 양귀비 꽃 잎이 하늘에서 내린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이 때는 총리, 국왕도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그저 그 추모의 2분을 기다릴 뿐이다. 2분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는 너무 디테일하니 궁금해서 댓글을 다는 독자가 있다면 설명하겠다.
11월 11일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은 영국에 살 때 한국전쟁을 기념(?)하여 런던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에 헌화를 한 적이 있다. 당시 3살밖에 되지 않았던 딸도 헌화를 시키며 내 마음속 깊이 생각했다. "이름도 위치도 모르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당신들의 희생에 감사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기억하고 갚아나가겠습니다. 편히 잠드소서"
Written by 기린이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