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자가에 군대 다니는 이야기

강남(행정구역 상) 자가 마련 이야기 – 2편

by 기린이아빠

이전 글에서는 금융자산 투자에서 내 집 마련으로 선회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보충하자면 완전히 선회한 것은 아니다. 앞서 다뤘듯이 자녀의 자산 형성을 위해서는 금융자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고, 부부 모두 우리사주와 연금저축펀드 IRP 투자를 통해 일정 수준의 금융자산을 확보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 미국, 중국, 인도, 베트남과 관련된 금융자산에 투자하여 계속해서 자산을 형성할 예정이다. 부동산 갈아타기를 할지 아니면 지금 사는 집에서 계속 살면서 꾸준히 금융자산을 모을지는 고민 중이지만 앞으로 5년 정도는 계속해서 금융자산을 모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 가족이 자가를 마련하게 된 과정을 천천히 풀어가고자 한다.


결혼하고 처가 근처에 전셋집을 구해 둘이서 행복한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동네를 밝힐 수는 없지만 처가는 집값이 비싼 동네라 전용 15평을 전세로 구하는데도 3억 5천에서 4억은 줘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임대사업자 물건을 구해 시세보다 저렴한 2억 후반에 전세를 구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도 자가 마련은 아득한 미래의 일이었고 나는 부동산이 아니라 금융자산에 투자하여 부를 쌓고 싶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신혼여행에서 아이가 생겼다.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장모님께 도움을 받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처가에서 보내니 15평의 좁은 집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근무지를 옮겨 18평 관사를 받게 되자 주거 문제는 일단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아내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 집"이 없다는 것은 점차 불안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나는 회피형으로 대처했다. "지금 당장은 부동산이 너무 비싸니까", "이렇게 올랐는데 조만간 폭락하지 않을까?"라는 희망으로 버텼던 것 같다.


또한 한문도 교수와 이광수 대표, 표영호 씨의 유튜브를 보며 다주택자를 싫어하고 적대시하며, 부동산이 폭락해야 모두가 산다는 광기에 휩싸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이나 나나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것인데 그를 부정하고 실체 없는 악마와 쉐도우 복싱을 한 것 같다. 마치 학창 시절에 나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를 질투했던 것처럼 말이다. 분명히 그 친구는 나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기에 더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인데.. 때로는 나 스스로 내가 홍위병 같다는 생각도 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가 다시 한번 근무지를 옮겨 주말부부도 아닌 월말부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셋집도 동일한 단지에서 동일한 평수의 다른 임대사업자를 만나 3억 초반에 더 높은 층으로 옮길 수 있었다. (임대사업자 만세!) 당시 다른 물건들은 4억 중후반이었다. 새로운 근무지는 서울에서 너무나도 멀어 월 1회 큰 마음을 먹고 갈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러다 보니 집이 좁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집에 가기라도 하면 좁은 집에서 세 가족이 지내며 받는 스트레스,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아내나 나나 개인의 삶과 공간을 중요시하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집에 가는 날은 자의 반 타의 반 밖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처가에 다시 한번 의존하게 되면서 장인, 장모님께 더 많은 부담을 드리고 처제도 불편하게 되었다. 나와 아내가 꼭 피하고 싶었던 시나리오이지만 우리 부부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도 내가 영국으로 파견을 가게 되어 주거 문제는 다시 한번 잠시 뒤로 미룰 수 있었다. 영국에서의 생활비를 고려하면 큰 대출을 받을 수는 없었기에 우리 가족이 영국에 있는 동안 부동산 가격이 조정받으리라 희망회로를 돌리며 일단은 영국으로 가게 되었다.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지만 다음에는 영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한국 부동산 시장은 어떤 일이 있었고 우리 부부가 어떤 준비를 해서 자가를 마련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독자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주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Written by 기린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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