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기다리는 존재

누구도 바라보지 않아도, 제 길을 가는 민들레처럼

by 주방 이모



아침 햇살 사이, 작은 민들레가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서 있다. 생명의 마지막 의식을 치르듯, 이미 노란 청춘의 흔적은 사라지고, 부드럽고 투명한 씨앗들이 남았다.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리는 그 모습이 낯설지 않다.

몸속 깊숙한 빛깔마저 비워내며,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생명의 끝이겠지만, 그 순간은 또 다른 시작이다. 땅 위에서 피어나 뿌리내린 시간을 떠나, 이제는 자신이 존재했음을 알리기 위해 하늘로 향하려는 몸짓. 무게 없는 듯 보이지만, 얼마나 많은 결단과 기다림이 이 작은 몸 안에 스며 있었을까.

바람이 불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날 수 없기에, 끝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기다림마저도 의연하다. 조급하지도 않고 초조하지도 않다. 언제 불어올지 모를 한 줄기 바람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듯, 바람에게 자신의 모든 운명을 맡긴 채 가만히 서 있다.

세상의 중심에서 주목받지 않아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위해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준비하는 모습. 가벼운 몸짓 하나에 담긴 무거운 이야기가 가슴 깊은 곳에 닿는다. 무엇 하나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깊은 울림을 준다.

누군가를 위한 외침이 아니고, 자신을 위한 마지막 발걸음도 아니다. 그저 존재의 이유를 다하기 위한 한 생의 마지막 몸짓. 꽃으로 피어났을 땐 수많은 시선과 찬사를 받았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조용히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별은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한 확산이며, 흔적을 남기기 위한 비상이기도 하다.

한 자리에 머물지 않겠다는 다짐, 누군가에게 닿고자 하는 간절함, 바람에 실려 가는 작은 씨앗 하나에 담긴 소망. 누구나 알아주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삶이었다.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스며들기 위한 여행. 누군가의 기억에 남지 않아도 좋다. 그저 흩어지고 스며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비움 끝에 남는 것은 가벼움이 아니라 단단함이다. 헐헐 날아가는 그 순간, 가장 깊은 뿌리를 가진 존재로 세상에 다시 뿌리를 내린다. 생명을 남기기 위한 가장 순결한 이별. 바라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투명하게 만드는 고요한 날갯짓.

하얀 민들레 한 송이 앞에서,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더 이상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낸 흔적이면 충분하다. 바람은 언제나 불어오고, 준비된 자는 언젠가 반드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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