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다시, 나를 설계하다

10부터 60대까지 나를 다시 설계한 시간들

by 주방 이모


10대 ,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계셨고, 이유 없는 구타가 일상이었다. 집 안은 늘 긴장으로 가득했고, 나는 숨을 죽이며 살았다. 결국 14살에 아버지의 사고로 학교를 자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일을 시작했다. 돈을 벌어야 했고, 부모님을 도와야 했다.


어린 나이에 낯선 도시에서 겪은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 반드시 달라진 삶을 살겠다.’ 그 다짐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20대 , 아버지를 피해 내 삶을 살고 싶어 도망치듯 결혼을 택했지만, 그 선택은 또 다른 진흙탕이었다. 시어머니는 알코올중독, 집은 등기조차 없는 무허가 건물, 시아버지는 후두암 투병 중이었고 남편은 술 없이는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가장이 되었다. 아이를 안고, 굶주리며, 빚을 갚기 위해 일터를 전전했다. 기대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했고, 버텨야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고장 난 자존감과 깊은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30대, 나는 두 아이를 안고 이혼을 선택했다. 세상은 차가웠고, 나는 혼자였다. 밥 한 끼 해결하지 못해 눈물짓던 날, ‘차라리 내가 사라져야 아이들이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절망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 작은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일어섰다.


40대, 삶을 바꾸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 중검·고검을 통과하고 방송통신대에 입학했다. 내 노후를 책임지고 싶었다. 하지만 딸아이의 갑작스러운 병환, 중환자실에 누워 의식 없는 아이 앞에서 나는 또다시 무너졌다.

그 순간, 나는 또다시 엄마로서 내 삶을 뒤로 미뤘다.


50대 , 모든 걸 걸었던 도전, 그리고 무너짐 샘플실,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남은 건 부채와 병든 몸, 절망뿐이었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주방이모’라는 이름으로 다시 일어섰다. 지쳐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나야 했다. 그게 내 몫이었다.


60대 , 보이스피싱으로 재산을 날렸다. 부채는

두 배가 되었고, 삶의 의욕은 바닥이었다. 그러나 나는 책에서 답을 찾기 위해 100권의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바꾸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고, SNS를 배우고, ‘1일 1릴스’로 세상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여전히 배움의 길 위에 있다. 64세, 나는 대학생이고, 매일 운동하며,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누군가는 내 삶을 보고 ‘너무 고생했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지금이야말로 내 인생의 진짜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 당신에게 전하고 싶어서.


“지금이 가장 빠른 시작입니다. 어떤 삶이든, 다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시리즈 60대의 리셋-건강과 삶을 다시 설계하다의 프롤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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