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성해나를 읽고
이 소설은 영험한 할머니 신을 모시던 무당인 화자의 이야기이다. 화자는 할머니 신 덕분에 유명한 무당이 되었으나, 굿을 하던 중 사고를 당한 이후 신이 더 이상 내려오지 않게 된다. 생계를 위해 이 사실을 숨기고 무당 일을 이어가던 중, 화자의 무당집 앞에 할머니 신을 모시는 어린 아이 무당이 나타난다. 화자는 아이와 신의 관계를 보며 질투와 분노를 느끼고, 결국 국회의원의 굿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는다. 마지막에 화자는 신 없이 굿판에 뛰어들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굿을 벌이며 이야기는 끝난다.
이 소설이 나에게 던진 질문은 진짜란 무엇인가? 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진짜’는 대개 대상 자체의 본질보다 외부의 인증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명품 지갑은 가죽의 질이나 사용감과 상관없이, 정품 로고와 보증서가 있을 때만 진짜로 인정받는다. 같은 재질과 형태를 지녔더라도 공식 매장에서 구매되지 않았다면 가짜로 취급된다. 진짜라는 판단은 대상이 지닌 가치보다 사회가 정한 기준에 의해 내려지며, 개인의 감각이나 경험은 쉽게 배제된다.
진짜와 가짜를 넘어 인생의 성공 여부마저 남들의 판단에 맡기고 살아간다. 어떤 삶이 성공적인지는 개인의 만족보다 사회가 정한 기준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직업, 성취, 소유물과 같은 외형적 조건들은 평가의 잣대가 되어 개인의 가치를 규정한다. 이러한 기준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보다 타인의 시선을 더 의식하며, 인정받기 위한 선택을 반복한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남들의 판단에 의식하며 살아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왜 가야 하는지 분명히 알지 못한 채 진학을 선택했다.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라기보다, 대부분이 가는 길에서 나만 벗어나면 이상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선택은 나의 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회의 시선에 맞춘 결정이었다.
내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사회의 시선에 맞춰 살아가는 삶이 잘못되었고, 오직 나의 확신에 따라 사는 삶만이 정답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사회와의 관계에서 나 역시 만들어지고 정립되기 때문에, 사회의 시선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다만 어느 한쪽에만 매몰될 경우, 우리는 진짜와 가짜라는 이분법에 갇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사회 혹은 나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자신을 조정해 나가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진짜와 가짜,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려는 노력 역시 절대적인 의미가 있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그게 그거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