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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은 낮아도 마음만은 억대입니다

by 나믿

나는 어릴 때부터 영어를 좋아했다.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사촌언니가 abc를 떼 주었는데 그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내 영어점수는 줄곧 100점이었다.


또 길을 가다가 어떤 외국인이 나에게 영어로 길을 물어보았는데 순간 교과서 속 대화문이 뇌를 스치며 “Go straight and turn right.”이 저절로 입에서 나왔는데 외국인이 길을 잘 찾아가던 게 아닌가.


나는 너무너무 신기했다. 내가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내뱉고 그걸 알아듣고 외국인이 길을 찾아간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영어와 사랑에 빠졌다. 항상 가방에는 영어문제집과 영한사전, 한영사전이 들어있었다. 지금처럼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벽돌 사전들을 지고 이고 시골 언덕을 넘어 넘어 학교와 집을 오갔다.


학원 하나 안 다녀도 줄곧 영어 1등이었고 전체 과목 1등인 친구가 오히려 나에게 영어 공부하는 법을 물어볼 정도였다.


나는 자연스레 영어의 최고봉인 동시통역사를 꿈꿨다. 외국에 쭉 살았던 사람도 되기 힘들다는 그 길을 나는 마침내 기어코 뚫어냈다.


입학도 졸업시험도 통과해야 동시통역 자격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해 내었다. 그리고 경단녀가 되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마을 전체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어쩜 이렇게 힘들까. 나는 육아를 하며 일을 병행할 수 있는 학원업계로 자연스레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일반 성인부, 고등부, 중등부, 초등부를 거쳐 지금은 유치 초등부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행복할 수 없다. 꼬물꼬물 아이들이 주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둘째는 발로 키운다고 첫째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나에게 있어 우리 반 아이들은 둘째, 셋째, 넷째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마음속에서 끙끙 앓던 이혼 고민을 떨쳐내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도와준 건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나는 매일 이 아이들과 행복한 성장을 하고 있다. 지금보다 행복했던 적이 없다.


보이는 것에 치중하지 않고 내면을 단단히 다져나가니 인생이 훨씬 여유롭고 행복해졌다. 요새 운동과 식단을 병행하면서 예전 몸무게로 돌아가고 있다.


40이 다 되어 이혼을 고민하고 결심하면서 나는 내 천직도 찾고 보석 같은 시간들도 찾게 되었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내 운명에 감사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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