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탁
김혜련
구겨진 종이컵 닮은 어둠이
헐렁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우리 집 식탁에 제일 먼저 와서 앉는다
갑옷보다 무거운 정장을
갈아입을 틈도 없이
퇴근하자마자 나는
전쟁 같은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투입된다
땀방울이 소금이 되어 김치찌개를 끓이고
삼겹살에 붙은 하얀 뼈가 기름잔치를 열고
늘 왕따 당하는 푸른색 나물들이 깃발을 흔드는
우리 집 저녁 식탁
텐션업 된 남편은 목소리 큰 세탁기처럼 떠들고
젓가락 두 짝보다 말수가 적은 나는
김치찌개로 귀를 씻어내며
오래오래 밥알을 헤아린다
부러진 나무젓가락 같은 어둠이
음식물이 잔뜩 묻은 입술로 하품을 하며
우리 집 식탁에 설거지 수신호를 보내며 자리를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