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말밥마켓

by 김혜련

말밥마켓


김혜련


요즘에는 바람 한 줄기에도 넘어집니다

요새는 햇살 한 줌에도 쉽게 넘어집니다

어제는 빗방울 한 알에도 어이없이 넘어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벌써 노인성 근손실일까요

노크도 없는 바람이 수시로 왕래한다는 공포의 골다공증일까요


정형외과 의사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 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경량운동화보다 가벼운 주머니 탓인가 봅니다

몇 년 전 고가로 구입한 음식물처리기

직장 잃은 저에겐 사치인 것 같아 중고거래 플랫폼에 내놓고 싶은데

혹시라도 사기꾼, 이상한 연락, 보이스피싱 등

눈뭉치처럼 쌓여 있는 여러 겹의 겁이 나서

한 달 내내 아파트 베란다에 망설임의 꽃만 가득 피우다가

오늘 오전 노란 튤립 꽃잎 터뜨리듯

말밥마켓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갔어요

징검다리 건너는 것보다 쉽게 GPS 인증 받고

고가의 음식물처리기 단돈 만원에 올려두었네요


올린 지 얼마 안 되어 말밥채팅 시작되고

우리 동네 공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네요

두근두근 떨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만나고 보니 저보다 두 살 많은 선량한 주부였어요

둘 다 주부여서 그런지 처음 만났는데 말이 잘 통했어요

공연히 겁먹고 말밥마켓과 담을 쌓았던

제 자신이 나이답지 않게 귀여워 그 사람과 한참 웃었어요


말밥마켓 거래하다 인연이 이루어져 결혼한 부부가 갑자기 생각났어요

말밥마켓 첫 거래에 돈보다 소중한 언니를 만난 건 아닌가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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