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극한의 폭력과 트라우마
-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김혜련
벌을 받는 기분으로 썼다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마침내 완독했다. 그 동안 그녀의 소설《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노랑무늬영원》등을 읽은 바 있는 나는 솔직히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는 일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힐링이 되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딘가 몹시 아프고 고통스럽고 우울해지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나름의 심호흡이 필요하고 실로 만만치 않는 인내가 필요하다.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는.
몇 년 전 대학원 재학 시절 임철우 소설 《봄날》을 읽고 한동안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던 적이 있었다. 임철우의 소설 역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처럼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80년 5월 그때 나는 1장의 중심인물 동호와 중학교 3학년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도덕선생님의 의상이 그날따라 멋지다고 수다나 떨던 나와 달리 같은 중학교 3학년이지만 동호는 그 끔찍한 비극적 역사 현장의 한복판에서 비참하게 희생당한 시신들을 수습하고 주검을 지키는 활동을 하며 기억과 증언의 역할을 맡아, 사건의 참혹함을 독자들에게 생생하다 못해 처절하게 전해준다.
이 글을 읽는 이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이글을 읽은 나 자신의 독서 노트를 채우는 마음으로 줄거리, 시점, 구성, 인상 깊은 부분 순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1. 줄거리
중학교 3학년인 소년 동호는 5․18에 참여했다가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계엄군에 의해 처참하게 희생당한 시신들이 있는 전남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자원하여 돕는다.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에서 선주 누나, 은숙 누나, 진수 형을 만나 함께 일하게 된다. 날마다 들어오는 시신들을 정성을 다해 수습하며 주검들의 말 없는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촛불을 밝히던 동호는 많은 시신들 사이에서 사랑하는 친구 정대의 참혹한 죽음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그날, 집으로 돌아오라는 엄마와 돌아가라는 형, 누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도청에 남지만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결국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혼으로 나타나는 정대는 시신이 부패하는 과정을 보며 자신이 왜 죽었는지, 그들이 자신을 왜 죽였는지 생각한다. 5․18 이후 은숙은 출판사에서 일하며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녀는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려다 검열 문제로 서대문 경찰서에 붙잡혀 뺨 7대를 맞는다. 검열로 누더기가 된 대본은 결국 연극무대로 올라가고, 은숙은 검은색으로 칠해진 지문을 입 모양으로 말하는 배우를 본다. 진수는 양심 때문에 5․18에 참여했다가 온갖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선주 역시 당국에 붙잡혀 하혈이 멈추지 않는 고문을 당한다. 시간이 지난 후 당시를 증언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선주는 그때의 고통 때문에 끝내 입을 열지 못한다. 마지막 장에는 아들을 잃은 동호 어머니의 슬픔과 아픔이 넋두리처럼 흘러나온다.
2. 시점 및 구성
이 소설은 2014년에 발표된 장편소설로 크게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또한 에필로그가 부록처럼 붙어 있는데, 이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는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의 시점은 단순하지 않다. 내가 아는 시점의 종류는 1인칭 주인공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3인칭 작가 관찰자 시점, 3인칭 전지적 자가 시점, 복합 시점 등 고작 5개가 전부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얄팍한 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복합 시점에 가깝다 하겠다. 혹자는 이를 다성적 서술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다성적 서술방식이란 소설 속에서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관점을 동등하게 서술하는 방식으로, 이 소설에서는 극한의 폭력에 희생된 개인들의 트라우마를 생생하게 그려내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2인칭 시점을 처음으로 접한 생경함을 느꼈다. 1장 ‘어린 새’가 바로 2인칭 시점이다.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를 지켜본다.~너는 눈을 크게 떠본다.(7쪽)’ 이런 식으로 서술되고 있다. 낯설면서도 인상적이었다. 2인칭 시점(동호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동호의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동호의 내면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동호는 상무관에서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을 수습하며 트라우마를 겪는다.
2장 ‘검은 숨’은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51쪽)’ 와 같이 1인칭 시점(정대의 혼)으로 서술된다. 서술자 정대는 죽은 사람이기에 어찌 보면 유령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동호의 친구 정대가 군인들에게 끌려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정대의 영혼은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며 동호를 그리워한다.
3장 ‘일곱 개의 뺨’은 ‘그녀는 일곱 대의 뺨을 맞았다.(65쪽)’와 같이 3인칭 시점(은숙의 이야기)으로 서술된다. 은숙이 경찰 고문을 당하고 검열된 원고를 지키려는 과정이 그려진다. 동호와의 과거를 회상하며 감정적 연결을 보여주는 점이 인상적이다.
4장 ‘쇠와 피’는 ‘나는 모릅니다. 왜 김진수가 죽었고, 그와 한조가 되어 함께 밥을 먹었던 나는 아직 살아 있는지.(107~108쪽)’와 같이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내(김진수의 감옥 동기)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문을 당한 기억을 회상하며,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드러낸다.
5장 ‘밤의 눈동자’는 ‘견디는 것은 당신이 가장 잘하는 일이다.(154쪽)’ 같이 2인칭 시점(임선주)으로 서술된다. 임선주라는 인물이 ‘당신’으로 등장하며, 그녀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사건을 회상하고 그 고통을 여전히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6장 ‘꽃 핀 쪽으로’는 ‘내 손으로 너를 묻었은게. 하늘색 체육복에다 교련복 윗도리를 입고 있던 너를 하얀 하복 샤쓰에다 아래위 까만 동복으로 갈아입혔은게.(181쪽)’와 같이 1인칭 시점(동호 어머니)으로 서술된다. 동호의 어머니의 독백이라 할 수 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과 아들의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야하는 고통이 서술되어 있다.
3. 인상 깊은 부분
1)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불쑥 바람의 형상이 드러나기라도 할 것처럼. 공기 틈에 숨어 있던 빗방울들이 일제히 튕겨져나와, 투명한 보석들같이 허공에 떠서 반짝이기라도 할 것처럼.(7쪽)
-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한강의 소설을 읽으면 어쩐지 우울하고 고통스럽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비극과 시커먼 어둠이 가슴을 짓누르는 듯해서 되도록 멀리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도입부인 이 부분은 소리 내어 여러 차례 읽고 싶어진다. 지극히 서정적인 시 한 수를 음미하는 것 같다. ‘바람의 형상이 드러나’다와 같은 형상화 작업이나, ‘빗방울’을 ‘투명한 보석’에 비유하는 섬세하고 정교한 표현기법 등은 시적인 아름다움마저 느껴진다.
2)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
뜨거운 면도날로 가슴에 새겨놓은 것 같은 그 문장을 생각하며 그녀는 회벽에 붙은 대통령 사진을 올려다본다. 얼굴은 어떻게 내면을 숨기는가, 그녀는 생각한다. 어떻게 무감각을, 잔인성을, 살인을 숨기는가.(77쪽)
- 대학시절 나도 전두환을 ‘전통’이라 칭하며 군부독재 타도를 외친 적이 있다. ‘얼굴이 내면을 숨길 수 없다’는 말 그때나 지금이나 진리임에 틀림없다. 내면을 숨길 수 없는 얼굴 수첩에 적어본다.
3)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114쪽)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양심이라는 말에 백 번 천 번 동의한다. 아무런 죄 없이 폭력에 유린당한 무수한 시민들이 양심 때문에 죄책감에 빠져 잠 못 이루고 끝이 보이지 않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가슴을 치고 괴로워하는데, 정작 독재의 총칼을 휘둘렀던 그들은 양심을 버린 채 호위호식하며 역사를 왜곡하는 자서전까지 써서 광주민주화운동 유족들 가슴에 또 하나의 상처를 남겼다.
4) 기억해달라고 윤은 말했다. 직면하고 증언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서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166~167쪽)
- 5․18 당시에 여성들이 겪은 고통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어 전율이 일어났다. 군인들이 삼십 센티 자로 자궁을 후벼 파고 소총으로 짓이겼던 그 끔찍한 폭력으로 불임이 된 기억을 증언해달라는 요구는 정말이지 인간으로서 너무 잔인한 것이 아닌가.
5)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 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아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207쪽)
- 방사능 피폭자가 죽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광주민주화운동의 피해자들의 가슴에 남은 상처는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상처로 덧나고 피투성이로 재건된다는 말이 문신처럼 가슴에 와 박힌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무자비한 폭력으로 훼손된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시신들의 참혹한 모습, 끔찍한 경험이 몸과 마음에 처절히 새겨진 살아남은 사람들의 검붉은 상처가 반복적으로 등장하여 가슴을 쥐어짜는 것처럼 힘들었다. 무차별적인 죽음과 살상, 지독한 트라우마가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치유되지 못한 채 끝내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질 것 같아 더 괴로웠다.
《소년이 온다》의 시대적 배경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한 광주민주화운동이다.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잡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했던 사건이다.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끝까지 저항했고, 선량한 시민들이 수없이 희생되었다.
우리는 그로부터 44년이 흐른 2024년 12월 3일 밤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비상계엄 내란사태를 경험했다. 무기를 지닌 군인들의 군화 발자국 소리, 하늘을 휘젓는 헬기의 소음 등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인간의 존엄과 이를 파괴하는 폭력이 공존하는 한 전 세계의 어느 장소, 어느 시대든 광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작가님, 커피 한 잔에 글 쓰기 좋은 저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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