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국수나무

by 김혜련


국수나무


김혜련


벌써 두 해째 흉년이 들었어요

폭군 닮은 비바람의 다발이

백 년 넘게 우리 동네를 지켜온

가부장적 은행나무의 남근을 뽑아내

대로변에 전시해두었네요

얼룩무늬 옷을 몽땅 빼앗기고

부끄러워 얼굴이 백짓장이 된 포플러나무가

간신히 울음 참고 그 옆에 서 있네요


일찌감치 벼멸구들의 놀이터가 된

갈밭골 무논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눈물이 이랑을 이루고 있네요


어머니는 오늘도 쌀밥도 보리밥도 아닌

하얀 국수를 삶으시네요

솔가지 끝에 매캐하게 달려 있는 붉은 눈물을

탁탁 때리며 국수를 삶으시네요


뒤란의 감나무에 놀러온 참새 몇 마리

국수 향에 취해 빠른 곡조의 노래를 부르네요

달큰한 향에 이성을 잃은 벌 몇 마리

부엌문을 벌컥 밀고 들어와

우리 식구들보다 먼저 국수를 맛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