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수크령

by 김혜련

수크령

김혜련

여름의 관절을 툭툭 부러뜨리고

가을은 길목마다 잘 익은 몸을 풀어놓는다

머리새들이 땀 젖은 억센 머리카락을 바람으로 감으며

가을이 왔다고 도시 근교의 집집마다

편지를 배달하느라 하루해가 짧다

해마다 가을이면 길가든 초지든 정원이든

커피색으로 물들이는 것은 옆구리가 시리기 때문이다

사내들끼리 무리지어 의리로 똘똘 뭉쳐 잘살고 있지만

가을이면 유난히 여인의 속살이 그리운 것은

테스토스테론이 왕성한 사내로서는 감추기 힘든 난제다

그령과 수크령 사이가 이리도 아득하고 이토록 멀었던가

억센 털로 덮인 내 손길이 그대 여린 몸에 생채기낼까 두려워

먼발치에서 가을바람 같은 휘파람만 불어보는데

그대 끝내 다가오지 못하고 뒷걸음질만 친다


여러해 전 논두렁길에서 말없이 포옹했던 그때를 기억하는가

가을바람 덕분에 안아볼 수 있었고 가을바람 때문에 작별했었지

머지않아 눈이 내리겠지 우리의 짧은 포옹도 흔적을 새길 것이고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겠지 옆구리에 시린 고드름 같은

외로움이 대롱대롱 자라겠지만 그대를 다시 품을 날을 기다리며

이 가을 누구보다 꿋꿋이 살아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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