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뽀리뱅이

by 김혜련

뽀리뱅이

김혜련

시간을 쟁여놓고 살면서도

아무에게도 시간 한 톨 빌려주지 않는

얼어붙은 석고상 같은 인색한 겨울

사람들은 나를 아주 연약한 잡초로만 알고

성급한 손장난으로 내 자존심을 톡톡 부러뜨린다

그들의 손가락에 뽑히지 않으려고

겨우내 엉덩이 근육을 키우고

밤새워 허벅지를 단련하고

종아리 펌프질을 꾸준히 해왔음에도

나는 겨울새의 깃털처럼 아프게 뽑힌다

저 깊은 땅속에 감춰둔 겨울 무 같은

내 DNA의 무수한 씨눈을 사람들은 모른다

그저 쉽게 꺾어지는 내 허리를 보며

어설픈 정복을 자축하는 그들이 오늘은 말미잘 혀 같다

그리움을 흥건하게 담은 채

노랗게 구운 햇살을 베고 누워

순결하게 단장한 우윳빛 속살을

사람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키만 컸지 속은 텅 빈 무뇌아라고 비웃는다

우윳빛 속살이 그 어떤 적의 공격에도

하얀 안개꽃으로 피어난다는

암호 같은 일급비밀을 아무도 모른다

시간을 가둬놓고 살면서도

누구한테도 시간 한 줌 빌려주지 않는

녹슨 청동상 같은 몰인정한 겨울

나는 막 돋아난 똬리 같은 봄소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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