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명국(秋明菊)
김혜련
지난밤 아파트 베란다 새시를 움켜잡고
간신히 매달려 있던 알몸의 바람이
이른 아침 저장무 같은 발목으로 출근길을 서두른다
서리가 내려 모두들 이불깃을 코끝까지 덮고
바깥출입을 망설이고 있는데
중국에서 이민 온 추명국 그 아재비는
그깟 망설임 있는 놈들의 엄살에 불과하다며
선크림 대신 맨얼굴에 분홍빛 희망을 바른다
서리가 내린다는 것은 가을
아니 겨울이 온다는 첫 기별 같은 것일 텐데
변변한 겨울 외투 한 벌 없는 가난한 아재비
발가락이 보이는 구멍 난 양말을 신고도
바람의 발길질에 쉽게 무릎 꿇지 않고
이토록 눈물겹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는지
야윈 등이라도 정성 들여 토닥여주고 싶다
배춧잎이 시들고 고구마 잎이 오그라드는
입김이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르는 추운 날씨에도
알콩달콩 오순도순 사랑을 채워가며
어엿한 일가를 이룬 아재비는
이방인이라고 차별받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도
얼어붙은 땅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발아시키듯
오래오래 일가를 이루며 아름답게 살겠노라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