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겹살에 소주 한잔

by 김경호

“우리들 두 눈에 그득히 물결치는 시작도 끝도 없는 바다가 있다.” 2022년 여름 광화문 교보문고의 글판에 담긴 김춘수 시인의 〈능금〉이라는 시 구절이다. 게다가 이수지 작가의 바다 그림이 글판 배경으로 함께 어우러져 있다. 광화문의 교보문고가 주는 여름 선물이다.

‘밥찬예술’ 외벽에는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이라는 안도현 시인의 〈퇴근길〉이 걸려 있다. 코로나는 사람들은 모이지 못하게 했다. ‘이것마저 없다면’이라는 말이 마음을 참 짠하게 했다. 삶을 버티게 만드는 힘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면 충분한 것인데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면서 몇 년을 보냈다.

세상을 보는 시인의 눈이라는 것이 얼마나 진지한지 짧은 한 문장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가 본 세상, 그가 본 사람들이 그의 시에서는 다 보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나에게 물어본다. 너는 그렇게 뜨거운 적이 있었는가? 연탄재, 지금은 비록 버려진 신세에 불과하지만 그에게도 한때는 불꽃을 활활 태운 그런 전성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2019년 겨울, 중국발 우한 폐렴이라는 기사는 그 전조였다. 당시 중국에서 유학하고 있던 윤지는 3학년의 겨울 방학을 맞아 평소보다 2-3주 이른 그해 연말에 귀국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담당 교수님이 학생들을 서둘러 한국으로 보내준 것이다. 3학년을 마치고 돌아온 윤지는 4학년의 1, 2학기 과정을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으며 학사 과정을 마쳤다. 졸업장과 학위증은 우편으로 도착하였다. 그 후 기숙사에 두고 온 물건들은 학교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연락이 있었다. 이런 것이 바로 중국 스타일이구나 싶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윤지는 중국에서 4학년 과정을 마치고 어쩌면 그곳에서 일자리를 구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러길 바랐다. 바람은 바람일 뿐 코로나가 이렇게 오래도록 우리 삶에 영향을 줄 거라고는 그때만 하더라도 몰랐었다. 생각해 보니 대학 졸업식조차 하지 못하고 우편으로 졸업장을 받은 것이 못내 서운했다. 그래서 우리들만의 특별한 졸업식을 하기로 했다. 윤지는 모르게 서프라이즈로, 대충이 아니라 제대로 하고 싶었다. 먼저 윤지와 명하를 데리고 가서 정장과 구두를 사 주었다. 졸업장에는 직접 파서 만든 직인을 찍었고, 식순도 만들었다. 명하에게 축가를 불러 달라고 했는데, 졸업식에 무슨 축가냐고 하면서 거절하는 통에, 유튜브를 통해 다함께 감상하는 걸로 대체하였다. 가사가 맘에 들었던 간디학교의 교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명하는 축하 꽃다발을 증정하였다. 졸업식 전날 밤에 초대장을 윤지에게 보냈다. 거실 유리문에 반짝이를 붙이고 풍선을 장식하고 윤지 얼굴이 들어간 축하 현수막도 걸었다. 기억에 남을 소중한 시간이다. 우리는 오로지 윤지를 축하하고 윤지가 그다음 발걸음을 떼는 데 이러한 가족 사랑이 동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졸업식은 나름 의미 있는 행사였다. 졸업장을 수여할 때 축사를 낭독하는데 윤지가 눈물을 보였다. 가족 간의 포옹식도 어색하지만 해냈다. 대체로 내성적이고 조용한 가족 구성원이지만 하자는 것을 따라 준 가족들이 고맙기만 하였다. 부끄럽지만 그날의 축사를 옮겨 본다.

(한 줄 띄웠습니다. 아래는 양옆으로 여백을 더 주어 본문과 구분을 하였습니다.)

“세상에 소리쳐. 마음껏, 마음 놓고, 힘닿는 데까지! 2017년 3월 두려움을 지닌 채 중국으로 떠나던 뒷모습의 윤지가 눈에 선하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21년 6월 학교로부터 졸업장은 건네받았구나. 아쉽지만, 4학년 과정을 온라인으로 수업 듣고 중국과의 나름 이별식도 못한 아쉬움이 많으리라 생각해. 중국에서의 짧지 않은 생활에 좋은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많았음을 짐작하면 그 힘든 여정에 박수와 위로를 보낸다.

세상에 소리쳐!

배운 것과 배운 것을 세상에 보이는 것은 다르며, 마음속에 있는 것과 마음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것도 다르며, 뭔가를 하는 것에는 나름 용기가 필요하며, 중국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된 것도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 생각해. 뭔가를 결정하는 데에 심사숙고는 필요하지만 너무 많은 고민에만 빠지는 것도 경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해. 그동안 지내 왔던 한 걸음 한 걸음은 앞으로의 삶에 조금 더 큰 보폭의 한걸음으로 부쩍 자라 있을 거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젠가 아빠에게 준 메시지에 이런 말이 있었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시간대에서 일하며, 자기 자신의 시간에 맞춰서 살고 있다고…. 그래서 인생은 행동에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거라고…. 긴장을 풀고 뭔가 하라고….’ 세상에 소리치는 순간을 위해, 릴랙스하기를. 우리 가족이 늘 뒤에 있음을 잊지 말기를, 그리고 오늘을 축하하며, 내일을 응원해! 가족 일동 20210822”

(줄 변경했습니다.)

축사는 이렇게 끝이 난다. 세상에 소리쳐는 윤지의 인디언식 이름,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으로 자라는 중이다. 아마 힘든 것, 어려운 것 잘 극복하면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코로나라고 하는 전염병은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 생활의 방식을 바꿔 놓았다. 마스크, 체온계, 소독제는 기본이 되었다. 외국을 다니기라도 하려면 코로나 검사 확인서가 있어야 하고, 출입국시 격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몇 년전 우연히 보았던 〈감기〉라는 영화가 현실에 와닿았다. 〈눈 먼 자들의 도시〉도 떠오른다.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공포이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완화되었지만, 코로나 상황이 심각했던 초기에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모이지 못했었다. 동네 식당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은 참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인원에 제한이 있었고, 그마저도 시간에 제약이 있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서야 오늘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안도현 시인의 이 시구절을(시를) 가게 앞에 걸었다. 삼겹살을, 소주를 조금이라도 더 팔고 싶어서가 아니라 코로나라고 하는 인류의 공적 앞에서 작은 숨이라도 쉬어 가자는 마음을 공유하고 싶었다. 사실 퇴근길이라는 시는 밥벌이의 고단함에 관한 이야기지만 코로나라고 하는 이런 시국에 서로를 잘 위로해 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 문구를 보고 좋다는 손님들도 있었다. 어쩌다 낮술을 드시는 분들이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라면서요.”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현수막 위엔 담쟁이 넝쿨들이 뻗어 있다. 질긴 생명력으로 겨울이 지나고 봄이면 담장을 가득 채우는 담쟁이들이 코로나를 다 덮어 버리면 좋겠다. 코로나뿐만 아니라 좀 좋지 못한 여러 가지 것들을 다 가리면 좋겠다. 시인의 글을 눈으로 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면 좋겠다. 비록 그것에 대해 말은 나누지 않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 이 정도는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겨우 이런 소소한 것조차 못하고 살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공감이 있다고 믿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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