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님
기사님
경비님
하느님
부처님
아버님
어머님
형님
누님
그리고 손님
“믿음과 사랑과 소망 중에 그중에 제일은 손님”이다. 그렇게 믿는다. 님 자가 붙은 말을 입에 붙이면 표현은 다정해지고, 따스해지고 부드러워진다. 좋은 말, 사랑스러운 말들이 그렇다.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일 년을 하루같이 똑같이 지내기는 어렵다. 한 명의 자그마한 인간으로서, 멘털을 관리하는 것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 손님들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다. 손님과 식당 주인의 관계를 떠나서 만남이라는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참 대단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생각을 한다.
음식점은 최선을 다해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손님은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기대한다. 당연히 부응해야 한다. 음식의 맛이란 객관적이지 못하고, 주관적이다. 유명산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식사와 함께 더덕구이를 주문한 손님이 맛이 없다는 것이다. 더덕구이를 보고 자기가 생각했던 모양도 맛도 아니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돈을 받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돈을 주지 않겠다고 한 것이지만, 옳지 않은 일이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꼭 돈을 받고 싶다. 그래야만 한다.
‘밥찬예술’에서는 손님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대체적으로 잘 들어주는 편이다. 그것이 지나쳐서 부부 갈등이 심해지기도 했다. 라이터를 찾는 손님에게 없는 라이터를 사다 드리고, 물 한 병 담아 달라는 손님에게 페트병이 없어 식당용 물병을 드리고, 심지어 ATM으로 출금도 해다 드리고…….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민예의 말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적당한 것이 좋은 것이고, 지나치면 오히려 모자라게 된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생각하면서 수업 준비를 하는 것처럼, 신도들을 생각하며 설교를 준비하는 목사님처럼, 우리도 손님들을 생각하면서 음식을 준비한다.
오늘도 우리는 가게의 문을 열고 음식을 준비하고 아직도 와 보지 않은 손님을 기다린다. 관계 맺기를 기다린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온다는데, 허투루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을 수는 없고, 남이라는 글자에는 언제나 점 하나를 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