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처음 간 것은 1992년 여름의 일이다. 사회 초년생의 첫 휴가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지만, 나름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일본으로 광고 공부를 하러 가야겠다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으로 이름을 드날리면서 살고 싶었다. 미국 광고 회사 어윈쇼의 ‘일과 후에 쓴 글(written after hours)’과 같은 헤드라인의 광고 카피를 쓰고 싶었다. 여차여차하여 그 언저리에서 일을 하긴 했지만, 내가 원했던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다. 30대 초반 시절, 한국방송광고공사의 광고교육원에서 여러 차례 연수를 받았는데 음담패설로 좌중을 웃기곤 하던 류남길이란 친구가 있었다. 훗날 농심기획 대표이사까지 지낸 그는 츄파춥스 광고로 세계 4대 광고제(칸, 런던, 클리오, 뉴욕)에서 동시에 상을 받기도 했다. 방송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듣기는 했지만 내심 부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여담이 길었지만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일본을 드나들었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어딜 가나 들리는 그들의 인사법이었다. 어서 오시라고 하는 ‘이랏샤이마세’였다. 크고 우렁차거나 싹싹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손님을 응대하는 인사였다. 당시 자동으로 열리는 대부분의 출입문들도 신기했지만 친절했던 그들의 인사법은 좀 새로웠었다. 오갸꾸사마(손님)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을 하고 있든간에 손님이 가게로 들어오면 직원들 모두가 크게 소리치며 인사하며 맞이하는 것은 스스로 기운을 북돋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잘 준비되어 있습니다’라고 하는, 인사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본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그것은 첫인상을 결정한다. 좋거나, 나쁘거나!
나는 먹어 본 가락으로 장사한다. 먹는 걸 좋아하고 많은 식당들을 다닌다. 그러면서 많은 것들을 배운다. 좋은 것들은 따라 해 보고, 좋지 않은 것들을 통해 나를 돌아본다. 어느 김밥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두 사람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인사는커녕 자신들의 일만 하고 있었다. ‘키오스크 주문이 들어오기 전까지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씁쓸했다. 그런데 음식은 아주 괜찮았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생겼다. 음식이 이렇게 훌륭한데 왜 손님 응대를 저렇게 할까? 벽에 보니 ‘테이블 휴지는 직접 버려 주세요(코푼 휴지)’라고 쓰여 있었다. “난 더러운 것 치우기 싫으니 니가 하세요.”라는 것 같았다. 주인의 마인드가 읽히는 순간이다.
나는 식당을 하는 사람이니까 남의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 테이블 쓰레기는 스스로 버리는 편이다. 테이블 옆에 쓰레기통이 없으면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런 것을 손님들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후 그 식당을 다시 찾아갔을 때에도 여전히 이랏샤이마세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 그 식당도은 말없이 사라져 버렸다.
식당은 음식의 맛으로만 승부하는 곳은 아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일을 마치고 늦은 시간 뭘 한 그릇 먹을까 이곳저곳 기웃대다가 들어간 식당, 홀 서빙 하시는 분의 얼굴이 몹시 피곤해 보인다. 더불어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그 일의 고단함을 아는 나는 안쓰럽게 생각했지만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를 되돌아보았다. 힘들다고 너무 힘들다고 손님들에게까지 알아 달라고 티를 내진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식당 일은 신경 쓸 일이 백 가지, 천 가지, 만 가지나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또 한 가지를 배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