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라 일하는 데 죽지는 않고, 그렇다고 일도 줄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도 지쳐 있나요? 그럴 겁니다. ‘소금 버는 일’인데 어찌 힘들지 않겠어요.”
정재찬 교수님의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의 제1장 첫머리의 구절이다. 첫 문장을 보는 순간 헉! 내 얘기네, 하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유명산에서 뭣도 모르고 유원지 장사를 시작했을 때 육체적으로 몹시 힘들었다. 그야말로 이런 것을 고생이라고 하나 보다 싶었다. 고생을 각오하고 뛰어든 일이었지만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저녁 먹을 시간 전에는 퇴근할 수 있었다. 그때가 시간적으로는 호시절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은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일을 한다. 대부분은 반찬 준비 때문에 그렇다. 단일 메뉴에 고정 반찬 두어 가지 내는 식당들이 많은 이유를 이제서야 겨우 알 것 같다. 영업시간은 12시간이지만 15시간 혹은 17시간 일을 해야 돌아간다. 기가 막혀서 읍소가 절로 나온다. 수많은 식당들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위대해 보인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휴일도 늘리고 브레이크 타임도 만들어 일을 조정하고 있지만 만만치 않은 노동이다. 안 해 본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일에 대해 해 본 사람들끼리 얘기하며 위안을 삼곤 한다.
직원이나 알바를 구할 때 경력을 중시한다. 왜냐하면 처음 하는 사람들은 일 서툰 건 둘째치고 체력적으로 견디지 못한다. 반면 오래 하신 분들은 지나치게 노련하다. 힘을 써야 하는 일에도 힘을 빼고 한다. 그게 힘든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비결인 셈이다. 나도 처음엔 행주를 꼭 짜지 않고 물이 줄줄 새는지, 설거지는 왜 자꾸 꼽재기가 끼는지, 음식물 쓰레기봉투는 왜 내다 버리지 않고 내게 미루는지 잘 몰랐기에 뒤에서 투정만 부렸다. 이제 내가 50대 중반에 들어서고 몸이 여기저기 망가지는 상황이 되다 보니 그분들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식당 일은 너무 열심히 하면 안 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은 남의 식당에서나 일할 때의 이야기고 나는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나와 결혼해 주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준다느니, 구정물에 손 넣게 하지 않겠다느니 하는 말들을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인즉 식당 일은 안 하게 해 줄게라는 말이라는 것을 이제 알 것 같다. 물론 면장갑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거나, 야채를 다듬는 많은 일꾼들을 보았다. 재주도 좋으시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일을 잘 못한다. 고운 손을 지키고 싶으면 식당 일은 하지 마시라고 하고 싶다. 나는 맨손으로 기민하게 일하는 대신 잠들기 전에 얼굴에 바르는 영양 크림을 듬뿍 손에 발라 준다.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속삭이면서. 윤지가 식당 일을 도와주면서 내가 쉬지 않고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걸 보더니 “엄마, 죽을 만큼 일해도 안 죽을 것 같지? 그러다 죽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마구 웃음이 났는데, 순간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렇지. 죽을 만큼 일하면 죽는구나.”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