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개도 친구가 있다
미친개라도 좋다. 혼자 다니지 마라
얼마 전 친구와 대화 중에 ‘미친 개도 친구가 있다’란 말에 함께 박장대소한 적이 있다. 그렇지 술꾼에게는 술친구가 있고, 노는 사람에게는 노는 친구가 있다. 그래서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이해하고 있다.
친구의 범위가 한없이 넓어질 수가 없는 것이 나이가 먹어가면서 시간도 돈도 마음의 여유도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좀 자유롭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게 될 때쯤에 자유와 구속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패기와 지르는 것이 줄어들면서 소시민으로 되는 과정을 착실하게 밟아 나가게 된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과 아직 총각으로 지내는 친구들과 뭔가 서운하고 짜증 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마저도 나머지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들이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갖고 보니 자기들도 여유가 없어지고 끈 묶인 강아지처럼 끈 닿는 주변만 오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미친 개도 친구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최소한 근처에 나를 아껴주는 친구나 친지가 있다는 것에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회에 똬리를 틀고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빌런들에게도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말이었다.
오늘날 고독사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점 점 더 많아진다는 소식을 간간이 듣는다. 언제 죽은 지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나서 발견되는 분들의 소식이 안타깝다. 미친개에게도 친구가 있다는데, 이런 분들은 미친개 정도의 취급도 받지 못하고 그렇게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갔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서너 달 전에 외국에 나와 있던 우리 부부에게 딸이 연락을 해 왔다.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는데, 자기가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국제전화로 동사무소에 연락을 해서 무슨 일인가 확인을 해보니, 우리 부부 둘 다 전화를 받지 않아서,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가족에게 확인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순간 사회가 바라보는 내 나이대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제 나는 50대 후반에 위치한 중노년의 연령대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전화였다. 아직 나에게 젊은이의 마음과 태도가 남아있고, 아직 젊은이들의 취향의 옷을 입고 철없이 다닐 때도 많지만, 공적 사회가 나를 바라보는 의식은 언제든 고독사할 수 있는 테두리 안에 사는 연령대인 것이다.
어떻게 미친개에게 친구가 있을 수 있을까? 그래도 뭔가가 서로 통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같이 다니지 않을까? 같이 진흙탕에 뒹굴 수 있는 객기 때문일까? 아니면 썩은 고기라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고도 탈 나지 않는 미친 광기를 공유해서일까? 어쨌든 그 이유를 다 밝혀낼 수는 없지만 같이 있으면 재미가 있고, 헤어지면 또 보고 싶고, 같이 달을 바라보면서 늑대처럼 부르짖는 그 대범함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소시민의 쪼그라든 심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친개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할지라도 들로 산으로 온갖 잡풀 진드기등을 옷 몸에 달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하고 싶은 것 발산하는 그 시원함을 언제나 한번 경험해 볼 텐가? 죽은 거지에게도 잔돈푼이라도 남아있다는 말이 있다. 비록 많이 아끼고 살피고 조심하고 살아도 결국은 자기 삶에 닥칠 것은 닥치는 것을 왜 모르는가? 조금은 더 당당하게, 조금은 더 용감하게, 조금은 더 개혁적으로, 조금은 더 용서하고,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내 것으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은 안 되는 것일까?
미친개에게도 친구가 있다는 말을 이 밤에 마음에 담고 잠자리에 든다. 짖고 싶은 마음 간신히 누르고, 오늘은 꿈속에서라도 미친 친구 개와 광야를 달리는 나를 보고 싶다.
멍 멍
2023-11-16, pm 1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