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욕은?

결국 마시는건가!

by 김종진

우리의 말 한국어는 의성어와 의태어와 더불어 욕 수준도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생활하고 있는 외국에서도 이 나라사람들이 이상하게도 한국욕을 쉽게 습득하고 활용하는 것을 가끔 보게된다. 아마 한국에서 귀국하는 자기 나라 사람들을 통해서든지 혹은 한국 사장님들을 통해서든지, 어떤 경우는 한국 미디어를 통해서 한국 욕을 습득하는 것 같다. K-culture의 여러 분야가 있는데, 한국 욕의 세계화도 한류문화의 한 유산으로 언젠가 연구의 대상이 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흔히들 가장 대중화되고 가장 쉽게 접하면서 쉽게 들을 수 있는 한국의 욕은 영어에서 ‘fuck you’에 해당되는 욕일 것이다. 여기에 여러가지 접두어나 접미사 그리고 파생어미를 붙이고 나아가서 부사나 화려한 형용사들로 그 뒤를 이으면서 호흡이 끊기지 않고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분야의 달인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여기에 팔도의 각종 방언으로 들을 수 있는 그 찹찰한 욕배틀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물 흐르듯이 잘 구사하는 욕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지기보다는 그 예술성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고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도 있다. 나는 어려서 황해도 출신 할머니의 걸죽하고 속된 욕을 매일 매일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내성과 내공이 있다. 중학교 1학년인가! 그 날도 난 이불속에서 일어나지 않고, 씻고 밥먹고 학교에 가야하는 시간이 가까왔음에도 여전히 뒤척이고 있었다. 이미 1시간 전부터 할머니의 유려하고 투박한 욕이 내 귓전을 두드렸지만, 나도 이제는 익숙한 탓에 미동도 하지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때 할머니의 한 마디의 욕을 듣고 ‘도의 경지’에 이르는 환희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 똥물에 튀겨 죽여도 똥물이 아까운 놈아’


물론 할머니의 화려하고 강력하며 다양한 욕을 이미 오랜세월 듣던 터라 내성이 있던 나였지만 이 욕에서는 그만 내면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와 대단한 욕이다, 이것이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할머니의 인생을 걸고 내뱉은 예술의 경지의 게송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난 할머니에게 웃으면서 ‘할머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똥물보다 못해요?’라고 불평을 하였지만 이것은 불평이 아니라, 욕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환희에 찬 내 마음의 표현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욕은 아니다.

한국 사람들이 구사할 수 있는 가장 큰 욕은 무엇일까?

욕이란 실로 짧지만 상대방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고 위협하며, 모욕감을 주고 그 상대방의 기를 죽일 수 있는 공격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내 뜻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거나, 내 뜻대로 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이면서 깊은 상처를 주기 위해서 욕을 하게 되고, 그 욕은 날로 날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아예 대화를 할 때에 그 시작과 끝과 중간중간 욕이 들어가지 않으면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어령 박사는 한국인의 문화적 코드에 대해서 말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하는 최고의 욕에 대해서 말을 해 준 적이 있다. 나도 어떤 욕이 최고의 욕일까 상상하면서 이어령 선생의 책을 읽었는데, 의외로 최고의 욕은 ‘국물도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이 말을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는가를 생각해보면 이 문장이 얼마나 큰 욕이 된다는 것을 실감을 하게 된다. 이어령 박사의 답변을 생각해 보니 충분히 공감이 된다. 이제 더 이상 너한테 베풀 어떤 은혜도 봐주는 것도 없고 에누리도 없고 너와는 끝났다는 표현이다. 더 이상의 딜은 없다. 넌 아웃이야.

이 말이 처절하게 실감나는 것은 우리 나라 문화의 베이스를 생각해 볼 때 더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는 국물문화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망한 사람에게 ‘말아 드셨군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 근 고기로 마을 사람 수십 수백명에게 고기맛을 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가마솥에 고기 넣고 각종 야채와 양념을 넣고 간장과 소금 넣고 사람수에 맞추어서 물만 부어 끓이면 된다. 이것이 국물의 기적이다. 서양사람들은 도무지 이해될 수 없다. 어떻게 고기 한 근으로 마을 사람 전체가 또한 지나가는 과객들과 거지들까지 다 먹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국물에서 인심이 나오는 문화적 배경을 가진 민족이다. 지나가는 행인도 거지도 이웃도 상관이 없다. 국물 조금만 있으면 밥 한그릇 말아서 먹으면 한끼가 해결이 된다. 이것이 우리의 인정이고, 은혜이다. 그런데 너에게 줄 국물이 없다는 말은 더 이상 너에게 줄 어떤 인정이나 은혜가 없다는 사형선고가 되는 것이다. 욕은 아무리 해도 국물은 거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정이 남아 있고, 만남을 유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상태이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사람들이 ‘너 국물도 없다’는 말은 더 이상 우리 둘의 관계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상황에서만 나올 수 있는 최고의 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국물조차도 메말라가는 사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난 오늘도 가마솥에 고기 서너칼 집어넣고 각종 야채를 넣고, 국간장과 각종 조미료를 넣고 물 가득 붓고 국을 끓이고 싶다.


국물이 남아 있는 사회건설. 이것이 희망이 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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