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구이로 사는 법

나는 긍정이 지겹다

by 김종진

한국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구이는 아마 고등어구이, 삼치구이, 갈치구이일 것이다. 그러나 난 여기서 이런 생선구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몽골어의 기초 단어를 통해서 어떤 삶의 원리를 찾아보려는 원대한(?) 뜻을 펼쳐보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몽골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왔다. 처음 몽골어를 배울 때에 ‘3구이’를 알면 몽골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기초적인 인간관계를 맺어나갈 때에 유익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몽골어에서 ‘구이’란 말은 단어 뒤에 붙어서 앞 단어를 부정하는 뜻을 가진다. 예를 들면 ‘뭉그(돈) 구이’하면 돈이 없다는 말이 된다. 이런 경우는 명사뒤에 붙은 말인데, 동사뒤에 붙어도 뜻이 된다. ‘미드흐(알다) 구이’ 하면 ‘모른다’라는 뜻이 된다. 이런 식이다. 뜻 자체를 보면 한 나라의 언어를 처음 배울 때에 긍정적인 단어가 아니라 우선은 부정적인 언어를 배우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부정의 언어를 먼저 배우는 것이 이방 문화권에서 살아가야 하는 외국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 ‘3구이’가 무엇인가를 알아보자.

- 미드후(알다) 구이 몰라

- 하마(관계) 구이 상관없잖아

- 벌러후(되다) 구이 안돼, 못해


사실 몽골에 사는 대부분의 한국교민들은 ‘3구이’에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몽골인들과 살면서 겪은 웃지 못할 많은 3구이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몇 밤을 지내도 다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한국인들이 겪은 고통과 기가 막힌 경험과 관련되어 약간은 하소연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이 대부분이기는 하다. 그런데 요새는 몽골인들의 이 3 구이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평안함과 평범한 삶을 유지하는 비결이 숨어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3구이의 정신을 가지고, 3구이를 삶에서 실천할 수 있다면 큰 실수나 인생의 큰 곡절 없이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1. 미드후(알다) 구이 - 나는 몰라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자. 간단하게 나는 그 일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하자. 이 말이 쉬운 것 같지만 사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2,600년 전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하지 않았나. 모르면서도 안다고 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경고한 것이다. 아는 체하지 말라. 네가 모른다는 그 사실을 알라는 표현이다. 사실 오늘날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은 모르면서도 안다고 하는 선생들과 지도자들 때문에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말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복음 5:37 KLB). 모르는 것에 대해서 그 이상의 말을 하면 그것은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 많이 말하고 아는 체하는 것이 긍정이 아니다. 비록 모른다고 딱 잡아떼면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고, 무언가 서먹한 기운이 사람들 가운데 생기더라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모르면서도 가르치려고 들고,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말들은 다 악한 의도가 깃들었다는 것이다.


2. 하마(관계) 구이 –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어찌 보면 무책임한 말처럼 들리는 말이겠지만, 사실 이 말이 맞는 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무고사건이 얼마나 많은가? 전 세계에서도 무고사건이 가장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고, 무고 재판에 들어가는 시간과 인력의 낭비와 재정의 낭비는 천문학적이어서, 찐 선진국으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지경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범죄현장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증인으로서의 역할은 시민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전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과 일에 대해서 트집을 잡고, 문제를 일으키고, 고소하고, 시비를 거는 일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될 수 없다. 아마 유튜브 같은 곳에서 나오는 비판적인 기사들 가운데 많은 경우는 진실과 사실보다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왜곡해서 편집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편집해서 내 보내는 사람들이 실제 그런 사건이나 사람들과 관련이 있느냐 하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남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비판기사를 내보내는 일들이 많다. 동네 사람도 아니고, 동문도 아니고, 같이 밥이라도 한 끼 먹은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깊이 관련해서 왜 그렇게 흥분을 하는지...

나와 상관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굳이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가 없다. 오지랖 때문에 서로가 불편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비록 부모 자식 간에도 이 선만 잘 지킨다면 얼굴 붉힐 일이 많이 없어질 것이다. 비록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사춘기가 지나면 엄연한 독립된 인격체로의 길을 가기 때문에 어는 정도 자식의 영역에 대해서는 나하고 상관이 없다는 태도를 가지고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성경에는 이것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다. 수천 년 전 시대에도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 때문에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나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이다.

길로 지나다가 자기에게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잠 26:17)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잠언 26:22)


3. 벌러후(되다) 구이 -안돼, 못해

못한다고 한 번 말하면 백가지 근심을 줄일 수 있는데, ‘도와주겠다’, ‘내가 할 수 있다’하고 자기가 한 그 말에 책임을 지려고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와 피해를 당하는가? 보증 서 달라는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안돼, 못해라는 이 말 한마디 못해서 집안 다 거덜내고, 그동안 쌓아놓았던 재산과 명성과 행복한 가정의 기둥까지 다 부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미국에서 잠시 지낸 적이 있었다. 선교사들이 모여사는 공동체였는데, 마당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죽 둘러선 구조였다. 낮이면 여러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곤 했다. 그중에 내 눈에 띄는 너무나 귀여운 아이 하나가 있었다. 이제 걷기 시작한 그 남자아이는 눈이 파랗고, 블론디 헤어를 가졌고, 피부가 하얗고 볼이 통통하니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나는 그 아이의 볼을 만지면서 ‘소 큐트’ 했는데, 그 아이는 정색을 하면서 ‘노’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난 이제 말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어린 꼬마의 말을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볼을 만지려고 했는데, 다시 그 아이는 정확한 발음으로 ‘노’라고 대답을 하였다. 물론 난 거기서 당황하였고, 그 이후 그 일에 대해서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는 그 시점에 분명한 발음으로 ‘노’라는 의사표현을 하도록 가르친 것은 아마 그의 부모였을 것이다. 외부의 어떤 사람이나 분위기를 통해서 원치않는 것이 나에게 강요될 때에 내가 ‘노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얼마나 미안하고 무안하겠나라고 생각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살아왔다. 되도록이면 문제를 만들지 말고 참는 문화권에서 살아왔던 나에게는 이 경험은 아주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노라고 말할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주는 교육이야말로 자녀들의 삶에 예측할 수 없는 피해를 막아주고 엄청난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노’라고 말하지 못하는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이 돈은 다음 주에 아들 대학 등록금 내야 하는 돈인데… 왜 돈이 없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사실 이러한 상황에서 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돈을 빌려달라는 지인에게 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이 등록금은 다음 주에 예약된 돈이기에 나는 돈이 없어요라는 말이 사실인 것이다. 변명할 필요조차 없다. 없다고, 안된다고 말하면 된다.

이런 면에서 나는 긍정이 참 지겹다. 언제까지 긍정을 하면서 허세와 오지랖과 헛된 과시(돈 빌려주고, 보증서고, 분수에 넘치는 사치) 속에서 살 것인가? 모른다고 하고,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고, 안된다고 분명히 말하는 사람이 편안히 살아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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