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과 운전기사

말도 안 돼

by 김종진

내가 살던 곳은 섬이었다. 전방지역인 이곳은 저녁 9시가 되면 섬으로 들어오는 다리의 통행이 금지되었다. 이런 사실이 우리에게는 무슨 큰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에는 내가 살던 동네조차도 우주만큼 크고 넓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동네에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서너 번 오가는 버스와 우리 동네에서 들어가는 섬에 있는 사찰 때문에 오가는 차들이 거의 전부였던 곳이라서… 그리고 이 다리는 내가 살던 곳에서 꽤 떨어져 있어서 그런 줄로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 동네는 조그만 포구가 있는 곳이고 버스가 끝나는 지점이 이서 문명적으로는 세상 소식이 가장 늦게 들어오는 뭐 그런 곳이다.


내 유년기의 기억이 시작되는 초기에 집단적으로 친구들과 논쟁이 불 불었던 사건이 있었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사건이라고 이름을 단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는 이 일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2km 정도 되는 마을 분교를 떠나 4학년이 되면서 면소재에 있는 본교로 이동한 26명의 우리 동네 아이들은 두 반으로 나뉘어서 곳곳에서 모여든 아이들과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면 소재지로 향하는 버스가 지나가면 한동안 주변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먼지기둥이 일어나는데 아이들은 먼지 속으로 버스를 따라 달려가면서 기름 냄새 맡는 것을 좋아했다. 뭐가 그리 좋았는지. 흙먼지와 휘발유. 요즘 부모들은 기겁을 할 일을 우리는 매일 반복했으니,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건강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산마루 언덕까지 올라가 저 멀리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성출이가 우리들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야, 너희들 이병철이 운전사가 대학을 졸업했다는 말을 들어봤어?

그러자 진군이 가 눈가의 주름을 위로 올리면서

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대학 나온 사람이 왜 남의 운전사를 하냐?

세상의 소식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awesome(무서운) 한 것이 나이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자가 이병철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이제 갓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텔레비전이 동네 전체에 한 두대 있을 시절인데,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떻게 이병철이 우리나라 최고 부자인 줄을 알고 있었고, 이 지식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았다. 아마 아버지들이 선술집에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할 때 옆에 앉아서 안주로 나온 간식을 얻어먹으면서 들었던 정보일 것이다.


어쨌든 성출이가 이병철의 운전기사가 대학을 나왔다는 얘기를 던졌는데 이 이야기의 출처는 성출이의 형일 것이다. 그 형은 읍내에서 중학교를 다니면서 아마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래도 그 당시는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가장 밝은 편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것은 아니다. 우리가 비록 어린이들이었지만 어쨌든 검증이 필요한 얘기인 것은 분명했다.

대학 나온 사람이 운전기사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얘기였다. 우리 동네에는 정규적인 과정을 통해서 대학을 나온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천대위 아저씨가 있었지만, 예비군 중대장으로 나름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닌 분이었는데, 이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와 술친구로 마을에서는 이미 이름다운 권위를 인정을 받지 못한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 중대장도 아마 술 때문에 직위를 잃고 당시는 날마다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대학을 거치지 않고 장교가 되는 코스를 거친 것으로만 알고 있다.

친구들은 한동안 이 확인할 수 없는 정보에 끊이지 않는 논쟁과 공격과 방어전을 치르게 되었다. 특히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걸어서 돌아오는 여정은 등교시간처럼 제한이 없는 시간이라서 이 길이 논쟁과 전쟁에 버금가는 많은 싸움판이 열리는 케이지가 되었다. 누구도 결론을 내려주지 못하는 이야기만 돌고 돌 뿐이었다.

우리의 싸움판이 된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길을 계산하는 공식을 만들어 봤다.

아마 파이 공식을 따라 계산하면 정확할 것이다. 학교 – 집 직선거리 4,000m * 3.14(파이)=12.5km


이 논쟁이 어느 정도 가라앉을 무렵 한층 더 논란을 불러일으킨 소식이 전해졌다.

이병철의 운전기사가 출근할 때 자기 차를 타고 이병철의 집까지 와서 회장의 차를 운전한다는 소리에는 거의 한 두 명은 너무나 기가 막혀서 넘어갈 뻔하기도 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나도 본격적으로 내 입장을 피력한 기억이 난다.

말도 안 돼. 뭐? 자기 차까지 있는 사람이 왜? 무엇 때문에 남의 차 운전을 하냐?

차가 있는 사람은 부자인데, 왜 무엇 때문에? 말도 안 돼. 놀리냐?

그리고 운전하고 저녁에 자기 차 타고 자기 집으로 간다고?

야! 이병철이 얼마나 부자인데, 월급을 얼마나 많이 주는데, 아마 월급 1년 모으면 너네 아버지 배 한 척은 살 수 있을 텐데, 나 같아도 그 정도 월급 주면 차가 있어도 이병철이 운전기사 하겠다. 이 얘기는 희철이의 논리였다. 희철이는 큰 형이 이미 인천에서 고등학생을 다니고 있때문에 아무래도 외지의 소식에 누구보다 밝은 축에 속해 있었기에 이런 개화된 의견을 나름 자신 있게 말한 것으로 이해해도 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동네에 차가 있는 사람이 없었다. 자전거도 그 이후에 성래아버지가 성래에게 사준 것이 수년동안 유일한 바퀴 달린 것이었다. 자가용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차를 운전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또 지난한 논쟁을 거듭하게 되었다.


얘기는 더 확산되는 법. 그 운전사가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아마 박사학위까지 있다는 정보가 어느 날 더 붙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이 얘기가 확산된 것에 대해서 그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억지로 유추해 보려고 한다면, 아마 원주의 아버지가 화물차 운전을 하면서 1년 내에 거의 10개월은 집을 떠나 있는데, 아무래도 외지의 소식에 노출된 거의 유일한 분이며 또한 차와 관련된 분이라서 그쪽일 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더 이상의 논쟁을 진행시키지 못했다. 말이 말 같아야지.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온 동네가 슬픔과 비탄에 빠진 것으로 우리들의 관심이 전환되었다. 이후로 한국은 빠른 격량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 우리도 그렇게 유년에서 사춘기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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