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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 Jun 10. 2024

어서와 제작은 처음이지  

단추를 그려? 내 손으로?

길 가에 세워진 가로수길처럼 늘 무심코 보던 것들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다.


하나님, 맙소사. 확실하진 않지만 매일 밤 늦게까지 불을켜고 뭔가 옷마다 단추를 달던 곳. 또또(단추) 공장이 바로 우리 집 옆 건물에 있었던 것 같다.


무의식 속에서 서바이벌 버튼이 눌리니 불현듯 3D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넷플릭스 셜록홈즈 시리즈_기억의 궁전


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퇴근길에 곧장 봉제공장에서 완성된 옷을 트렁크에 한가득 실어왔다.


글로 쓰니 가볍고 캐주얼한 느낌이지만 실제로 완성된 옷들이 켜켜이 쌓여 내 키만 한 크기로 대봉에 담겨 있는 모습을 눈으로 보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아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가.'


사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봉제 강국]이다. 의류 공장도 많고 손기술이 좋아 인도네시아나 중국제에 비해 품질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원단도 마찬가지다. 한국 섬유는 워낙 독보적이라 비싼 서구 브랜드 옷을 사보아도 한국의 ‘면’ 만큼은 따라올 수 없는 차별점이 있다.  


한국 전쟁이 후 침체된 나라 경제를 끌어올리던 주요한 산업이 봉제산업이었다고 하니 알만 하다.


그래서 더러 오해를 사는 부분이 있다. 봉제 강국 한국에서 티 한 장 봉제하는데 공임비 2,000원이면 되지 않느냐고 제작비가 얼마 안 드는 줄 안다. 그래서 제작을 하면 무조건 많은 마진을 남길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실제로 내가 다녀본 바로 티 한장의 평균 공임 가는 최소 5,000원에서~8,000원 사이었다.  특히 나처럼 500장 미만의 제품 수량을 제작하려고 하면 사실 8,000원을 준다고 해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아쉬운 사람은 나였다.


품질 좋은 봉제기술을 산다고 생각하면 덜 아쉽겠다. 그러나 판매자 입장에서는 중국이나 베트남 생산 단가와 비교해 벌당 가격이 두 배이상 차이나는 공임비를 지불해야 할 때 또 한 번 아찔할 수밖에 없다.  


그때 당시 인터넷에서 유아동 티셔츠 한 장 검색하면 나오는 시장가는 저렴한 건 평균 8,000원~10,000원이었고 브랜드마저도 세일 가면 2만 원 선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벌당 2만원정도 제작비를 들여산더미 같이 많은 아동용 우비를 제작했다. 여기에 마진도 붙여 팔아야 한다.


아직 포장용 비닐이랑 택도 안붙였다. 거의 소비자 가격으로 생산했기 때문에 여기다 마진을 붙이면 과연 사람들이 사줄 것인가 가슴이 타는 듯이 옥죄어 왔다.


특히 나의 경우 완전 제작 시장에서는 초보 오브 초보인 ‘제작호구’였기 때문에 공임도 조율할 줄 몰랐다. 그리고 조율할 자격도 안되었다. 실제 낮은 공임을 받으려면 최소 3,000장 정도는 제작한다고 했을 때 공장과 가격 주도권이 조금이라도 생긴다. 그것도 아니면 매달 일정수량의 발주를 넣어야 한다. 마치 월급공장처럼 말이다.


우선 지금 현재 내 상태로 돌아와 보자. 단추가 없는 상태의 300벌의 아동용 우비를 받아왔다. 아직 팔지도 않았는데 원단 값, 공임비를 500만 원가량 지출했다. 남편의 월급은 200만 원 들어온다.



두근대는(나쁜 의미로) 마음을 눌러 담고 내 머릿속에 펼쳐진 지도상의 위치가 맞기를 바라며 집 앞으로 왔다. 눈알을 열심히 굴리면서 골목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공장은 진짜 있었다!


구축 빌라 1층에서 간판도 없이 부부 둘이서 운영하는 아주 작은 공장이었다. 단추 다는 기계가 여기저기 놓여있고 여자 사장님은 산처럼 쌓인 옷에 기계처럼 뭔가를 표시하고 있었다.


보통 봉제공장은 엄청 시끄러운 편이다. 안! 녕! 하! 세! 요!! 하고 힘주어 말해야 전달이 겨우 될 듯 말듯한 봉제 공장과 달리 문턱을 밟는 내 발소리만으로도 단추 공장 부부는 일제히 나를 향해 눈을 돌렸다.


최대한 안쓰러운 표정. 도와주지 않으면 1시간 이내로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입장해야 한다.

나는 연민이 들게 하는 가련한 표정을 장착하고 옷을 들고 가서 설명했다.


이래 저래해서 우비에 단추를 달아야 하는데 가능한지 어느 정도 걸리는지도 물었다.


남자 사장님이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지고 온 옷을 무심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살폈다. 손가락 두 개를 이어 붙인 모양으로 생긴 안경을 콧등에 겨우 걸친 아저씨는 안경너머로 나를 흘깃 바라보았다.


“이거 말이야 이거. 단추 자리를 표시해야 하는데?”


하 정말 제작은 난관에 또 난관이다. 단추 자리는 또 뭐란 말인가.


”단추 자리를 표시해 오면 달아줄게! “


“어.. 어떻게 표시해요? “


”그 옷에 지워지는 수성펜 있어. 그걸로 옷에 자리 표시해 와! “



제작을 몇 번 해보고 난 후 알았지만 단추 자리라는 건 직접 그려오지 않아도 된다. 스냅을 칠 때(단추를 달 때) 패턴을 전달하면 사이즈별로 단추 자리가 함께 표시되어 있어서 그걸 보고 단추 자리가 없이도 충분히 단추를 달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 당시엔 아는 게 없었으니 몸이 고생을 많이 했다.


단추 자리라니. 내 우비는 팔릴 자리가 생길때까지 이렇게 주인을 잘못 만나 공장을 떠돌아야 하는 처지였다.


나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우리 단추 그려야 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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