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무실 계약
첫 제작에 이리도 운이 좋다니. 나는 이제 ‘나만 팔 것’이 생겼다는 기쁨에 몇 일간은 잠도 못 자고 고민했다.
무척 설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 채 마냥 들떴다.
이제야 제대로 사업을 시작한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사업 시작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사무실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제대로 사업자등록증과 통신판매업을 신고하고 네이버에도 정식 몰을 등록했다.
계약한 첫 사무실은 소호 사무실이었다. 내 기준에는 정말 만족스러웠는데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지하였다. 반지하도 아닌 진짜 지하에 있었다. 소호 사무실이어서 5-6명 정도가 30평도 채 안 되는 지하 사무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일하는 구조였다. (인 당 5평 정도의 데스크를 사용한다)
쥐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상상하고 갔는데 그보다는 안전(?) 해 보였다.
바퀴벌레가 매일 밤 디너파티를 즐기던 폐 건물에서도 사무실을 차려보았던 터프한 경험이 있어서였는지 이 정도면 충분했다. 심지어 냉 온 정수기가 있었다. 따뜻한 인스턴트 차와 커피도 마실 수 있었고, 프린트기와 공용 컴퓨터, 그리고 에어컨도 있었다.
가격도 파격적이었다. 보증금 30에 월세 15만 원이라는 아주 흡족한 가격이었을 뿐 아니라, 택배도 2000원 미만으로 저렴하게 계약되어 있었다.
매달 고정된 수입이 있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고정비를 줄이는 게 가장 중요했다. 기존에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도 나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소호 사무실 안에는 그 나름 1인 회사 대표라며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과 함께 오래 지내다 보니 왜 회사를 뛰쳐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전형적인 한국의 회사에서 근속할 수 없는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하나같이 모두 갈등을 싫어하고 착했다. 웃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서로를 사장님이라 부르며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저녁시간에맥주 회동을 하기도 했다. 하나하나 재밌는 캐릭터 들이라 글에 실어보려고 한다.
1. 박사장님: 한국전력에 다녔다가 퇴사하고 주식과 코인을 채굴한다. 정치에서 밀리고 한직으로 발령받았다가 재테크로 돈을 벌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작은 사업도 구상할 겸 소호사무실에 1번으로 들어왔다. 소호 사무실의 터줏대감.
2. 이사장님: 강원도와 전국 각지를 다니며 건축물을 설계하는 1인 사무소다. 나름 골드미스터였는데 40살이 다 되도록 선만 보고 실제 연애로 이어지지 못했다. 박사장님 말에 따르면 이 근방에 아파트를 자가로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진짜인지는 모른다)
3. 다크에이 사장님: 내 옆자리 언니 었다. 네이버 쇼핑몰에서 신발을 떼다 판다. 늘씬하고 성격도 좋다. 39세. 백화점과 아웃렛 판매를 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했다. 판매 경력이 쌓여서 그런가 특유의 판매톤이 말투에 남아있다. 날 보고 늘 ‘사장언니~’라고 콧소리가 가득 들어간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 언니 처음에는 여성복을 팔았는데 영 장사가 시원 찮았다. 그러다 내가 신발을 팔아볼 것을 제안했었는데 진짜로 종목을 바꾸었다. 덕분에 늘 환기도 안 되는 사무실에 중국산 본드냄새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4. 유 부장님: 유일하게 사무실에서 부장님으로 불렸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꽤 되신 듯하다. 나이는 60대로 추정. 기존 회사 다닐 때 강사 인맥을 활용해서 기업체에 강연 스케줄과 행사를 주관하는 1인 사업을 하신다. 정말로 인상이 좋으셨는데 문제는 인상만 좋으시다. 평상시 갑의 위치에서 근무하시다가 은퇴하셔서 적응이 안 되시는 건지 기업에서 의뢰가 들어오면 번번이 고자세로 나가서 일을 늘 그르치신다. 어떻게 아냐고?
기차화통 삶은 것처럼 큰소리로 늘 통화했기 때문에 안 듣고 싶어도 마치 귀옆에서 얘기하는 것 같았다.
5. 그리고 김사장: 나. 아동복 판매를 한다고 한다. 30세로 사무실의 막내였다. 아저씨들의 초기 관심을 독차지했다. 애기엄마라 사무실에 거의 상주하지 못했는데 출근하는 날이면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특히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남편이 부럽다”는 이야기 였다. 아마 육아하며 사업으로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 했나보다.
이 5명은 가난한 독수리 오 형제처럼 지냈다. 매번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서로의 비즈니스 근황을 물어댔다.
거의 매일 만났지 만 수다는 쉽게 이어졌다.속삭이기만 해도 동굴처럼 울리는 지하의 사무실안에서 서로 돕고 이해했다. 서로가 약간씩 애처로워 보인달까.
그날도 어김없이 제작 샘플이 거의 다 완성되었다는 통화를 끝으로 사무실을 나가려고 할 때였다.
저 퇴근이요~^^ 하고 웃으면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문 앞에 섰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공장에서 온 전화였다. 공장 실장님은 태연하게 물어보셨다. “또또 공장은 어디로 보내면 돼?”
“네?????” 또또공장요???? “
” 그래! 단추 공장! 스냅 달아야지. 이거 우비라매! 그냥 단추도 없이 완성해?”
오. 마이 갓. 단추 다는 것도 당연히 공장에서 해결해 주는 줄 알았다. 단추는 단추 전문 공장에서 따로 공임을 맡겨야 한다는 걸 그제야 깨닫고 패닉에 빠졌다.
제작을 너무 쉽게 생각한 내 탓이었다. 그때머릿속에 희미하게 뭔가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