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니 May 27. 2024

나만 파는 것을 만들다.

제작 도전기!

그렇게 생각해 낸 특별한 아이템은 바로 '아동용 우비'였다. 우리나라 특성상 <여름>에 팔리는 계절성 상품의 성격을 띤다.


그렇지만 이왕 자체제작 상품을 만드는 거 남들과 다른 종목을 선택했다. 대부분 티셔츠나 바지류 등 제작이 어렵지 않은 상품들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체 제작 '우비'를 만들어서 이 치열한 레드오션에서 헤엄쳐 나가고자 결심했다.  


보통 경쟁구도에서 이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1) 비교 대상이 안되도록 누구보다 월등히 뛰어나서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는 법.

(2) 출전자가 거의 없는 대회에서 혼자 나가서 순위권에 들어가는 방법!


나는 무의식 중에 2번을 선택했다. 나중에 지인들이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라고 물었을 때,


마치 촘촘히 계산하에 기획한 상품인 것처럼 포장했지만 사실은 본능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진짜 고민은  <그냥 아동용 우비>를 만들면안된다는 것 이었다.


기존의 우비 전문 판매자나 저가형 중국산 우비에게 밀릴 것 같았다.


당시 시장에는 저가형 고가형, 판초형, 재킷형 등 다양한 우비들이 이미 절찬리 판매중이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나만의 특별한 '킥'이 필요했다.


마냥 내 눈에 예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수도 없이 다양한 키워드로 검색해 봤던 기억이 난다. #아동용 우비 #아동레인코트 #유아용 우비 #여아용 우비 #남아우비 등등 우비를 만들기도 전에 정보의 홍수 속에 잡아먹힐 지경이었다.


나는 인터넷이 분명 엄청난 삶의 유익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무언가 시작하기도 전에 사람을 질리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우비를 검색만 하다가 24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전공은 심리학이다. 의류 디자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지식이 전무한 상태라 막막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뭐.. 꼭 전공 따라 직업을 가지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 살짝 윙크를 날려주었다. 당시 내가 살고 있던 동네는 서울에서 봉제공장이 가장 많이 몰려 있기로 유명한 중랑구였기 때문이다.


약간의 사전 조사를 마친 나는 일단 봉제 공장 카페에 가입했다. 도보로도 갈 수 있는 공장이 지천에 널려있을 줄이야. 가장 가까운 직기 공장에 내가 만들고자 하는 우비와 가장 비슷한 상품을 두어 개 들고 뚜벅뚜벅 찾아갔다.


"제가 우비를 만들려고 하는데요."


공장: "네, 그런데요?"


"이.. 이렇게 생긴 우비를 만들려고요."


공장: "네, 그런데요?"


첫 관문부터 위기였다. 기본 봉제용어도 하나도 모른 채 빈 몸으로 터덜터덜 찾아간 내가 바보였다. 웬 사업체의 대표라고는 하나, 자본도 없어 보이고 봉제에 관련해서는 초보 티를 있는 대로 뿜어내고 있었다.

정말 용감했다. 자칫하면 사기도 당할 수 있었을 텐데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혼자 공장에 쳐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무식해서 용감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공장에서는 '멘탈이 탈탈 털렸다'는 표현이 딱 알맞았다.

봉제 기계들이 일제히 내는 굉음에 가까운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봉제공장 사장님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쏟아 내셨다.


미스마끼를 할 건지 오버를 칠 건지, 가다는 이대로 갈 건지 주머니는 구찌로 박을 건지 등등 쉴 새 없이 말씀하셨는데 그때 내 표정이 어땠을지 모르겠다.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결국 못 알아듣는 듯한 모양새가 되자 갑자기 뚝, 대화가 끊겼다. 우리 공장에선 원하는 대로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거절이었다.  


생각보다 거절은 타격이 없었다. 다만 이대로 모든 계획을 접을 수 없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물어봤다. 울 것 같은 내 마음이 읽혔는지 사장님은 우선 패턴실에 가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모든 옷의 시작은 패턴이라고. 알고 보니 패턴은 옷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지도이자 매뉴얼과도 같은 중요한 시작점이었다.


나는 그제야 '지도'를 찾으러 가까운 패턴실을 찾아갔다. 패턴사를 만나서 내가 만들고자 하는 아이템을 설명했더니 손사래를 치셨다. 아무래도 귀찮았거나 골치가 아팠다거나 둘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뒤늦게 알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었던 우비는 처음 제작을 시작하는 사람이 처음 시작할 아이템으로 도전할 종목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 내가 생각했던 우비는 무려 변신 우비었다. 접으면 파우치가 되어서 주머니처럼 모양이 바뀌는 형태였는데 거기에 투명 창도 있어야 했다.


비에 젖지 말라고 우비에 달린 모자를 씌우면 아이들은 시야가 가려서 앞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만들었던 실제 제품 사진


육아하면서 실생활에서 비롯된 아이디어였다.  아이가 밖에서 입은 우비를 입고 그대로 실내 쇼핑센터라도 들어갔을 때 곤란한 적이 꽤 많았다. 우비에 빗방울이 묻은 채로 유모차에 걸었다가 내 배가 다 젖어버리기도 했다. 또 기존의 우비들은 가볍게 가방에 넣어서 다니기에도 애매해서 아동용 우비는 휴대성도 떨어진다고 느꼈다.


접으면 포켓 주머니가 되고 펼치면 우비가 되는 귀여운 우비를 만들고 싶었으나 여기저기서 안된다고 하니 기세가 한풀 꺾일 무렵이었다.


그때,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찾아가 보자 해서 동네를 바꿔 찾아간 새로운 공장에서 은인을 만났다.


우리 엄마 또래의 공장 실장님은 마치 나를 딸처럼 여겨 가엽게 보셨던 것 같다.


제품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얘기하는 나를 보며 '애기 엄마가 애쓰는구나.' 하며 후한 인심을 베풀어 주셨다.


뭔가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고민만 하고 거절당했던 패턴도 다시 잡아주시고, 기존에 내 아이디어보다 훨씬 더 귀엽고 재밌게 풀어주셔서 드디어 샘플 작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 지기까지 갖은 고난을 다 겪었었다.




당장 원단(옷감)을 구매해 본 적도 없던 완전 초짜의 내가 사기당하지 않고 첫 제작 상품을 낼 수 있게 도와주신 고마운 분이다.  


보통 공장에서 오더 받는 수량의 3분의 1도 안 되는 터무니없이 작은 발주 수량으로도 나는 제작 상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샘플 옷을 가지고 주차장에서도 촬영을 했었다.
아이가 어린이집 가는 길에 찍었던 촬영 사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