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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 May 13. 2024

맞벌이는 처음이라.

(feat. 시어머니)

그때는 이혼하고 싶을 만큼 분노가 차올라서 가까운 법원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유명 연예인 이효리가 라디오스타라는 토크쇼에 나와서 했던 말은 진리다. 자기들 부부가 나오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어쩜 그렇게 안 싸울 수 있냐고 자신들의 다정함을 부러워한다고 하더라면서 했던 말이다.  


이효리가 그때 옅은 웃음을 지으며 "저희는 가능해요. 저는 돈이 많잖아요. 그것도 엄청."이라는 대사로 토크쇼의 패널들을 웃겼다. 공감한다.


 "돈은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불행을 막아준다."는 말은 반박할 수가 없다.  


우리가 가장 많이 싸웠던 때를 회상해 보면 사업을 시작하고 초반 무렵이었다. 남편한테 바라는 것도 많아졌다.


전담하다시피했던 육아를 함께 분담하는 것 그리고 집안일 분배의 문제였다.

이제 남편도 함께 힘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작하고 약 3개월 정도가 지났을까.  <쾌속 배송>과 <약간의 손해>를 감당하기로 작정한 나의 작고 소중한 사업은 드디어 돛*을 달았다.


*그 돛이란 게 우리가 사회적으로 명명한 그 ‘돛’ 이라기보다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나오는 그 통나무 배 위에 올린 엄지손톱만 한 사이즈의 깃발이었지만.


눈에 띄게 좋아요와 공유가 일어나기시작했고 사진에 문의가 달리기도 했다.


나는 의욕이 샘솟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관심만으로도 뭔가 부자가 된 것 같은 벅찬 감정이 들었다. 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낮엔 육아와 사이트 관리를 하고, 밤에는 인터넷 바다를 항해하며 cs 댓글을 달았다. 벤치마킹도 해보고 내 쇼핑몰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비록 쥐똥만 한 작은 돛단배를 띄웠지만 이왕이면 태평양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의 차오르는 의지와는 다르게 처음시작부터 녹록지 않은 어려움을 맞았다. 훼방꾼은 내부에 있었다.


나의 85년생 남편은 신혼 초 상당히 구식의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주말 아침이었던 것 같다. 출근해야 하는데 신을 양말이 없다고 짜증을 냈다.


이때 그가 내뱉은 말과 행동은 아직도 내 마음속 명예의 전당에 랭크되어 있다.


“집에서 주부가 뭐 하는 거야. 주부가 주 3회만 세탁기를 돌린다는 게 말이 돼?”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이렇게 잘 살아보려고 육아하랴 돈 벌 궁리 하랴 애쓰면서 지내는데 세탁기를 주 3회 돌린다고 욕먹다니.


주 3회라는 건 사실상 이틀에 한번 돌린다는 건데 그게 뭐가 잘못되었나. 꼴랑 3인 가족이고 나는 심지어 출근도 안 한다. 빨랫감이 턱없이 적아서 나름 효율적인 세탁 주기를 찾은 게 2일에 한 번이었다. 그 당당한 태도와 말투에 나는 머리에서 불이 났다.



지지 않고 같이 내질렀던 것 같다. 한참 싸우다가 남편은 갑자기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진짜 빨래를 매일 안 돌려도 되는 건지 확인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엄마가 자기편을 들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아직도 나는 그 이유를 듣지 못했다.


우리의 이 치졸한 싸움을 엄마까지 알게 하자는 건가. 내가 서울에서 고군분투는 할지언정 잘 살고 있는 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한테 만큼은 들키기 싫었다. 평소 남편이 좀 구시대적으로 굴 지언정 엄마 앞에서는 곧잘 숨겨왔었다. 이 남편의 안하무인 태도에 나는 마음속 깊이 차오르는 분노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엄마한테 전화하기만 해봐!!! 우린 끝이야!!!"

하고 방에서 나가는 남편의 뒤통수에 빽!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남편은 의기양양하게 친정엄마에게 기어코 전화를 걸었고 나는 방 안에서 멍하니 아이와 함께 남편이 밖에서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는 남편의 상기된 목소리와 격앙된 어조에서 우리의 이 거지 같은 갈등을 알아챘다.


그리고 엄마의 대답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엄마는 기가막힌 대답을 했다.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이 살짝 기세가 꺾여서 아군을 잃은 표정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나는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살짝 "그때 도대체 뭐라고 했어?"라고 물었을 때

엄마의 낭랑한 대답에 나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엄마 -  "뭐라고 했냐고? 아~ 김서방 나는 우리 딸 고3 때도 지 양말 속옷 빨래는 직접 하라 시켰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때 남편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남편이 아들이던 시절 시어머니가 아들을 그렇게 키웠던 것이다. 양말이나 속옷이 없어 당황해 본 적이 없던 삶을 30년 이상 살다가 나와 결혼했다.


내일 입을 속옷이나 양말이 없는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뉴얼이 없는 가정환경. 그는 상당히 고전적인 가풍에서 자란 남자였고, 어머니는 딱 그 시대상에 어긋나지 않는 성실한 전업 주부셨다.


남편은 아이들 육아와 살림은 엄마가 하는 게 당연한 가부장의 문화를 겪으며 자랐다.  


사실상 완전한 가모장집안에서 자란 나와 각자 상극에 있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내가 그 당시 확인했던 바로는 "아내가 일을 하는 건 옵션에 없었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던 걸로 보아 남편은 나쁜 의도는 없었던 걸로 보인다(?)


남편은 그나마 지금부터 꼬인 스텝을 나와 함께 발맞추며 익히면 된다.


진짜 문제는 지근거리에 살던 시어머니였다.


내 사업 배경에는 시어머니 이야기가 빠지면 정말 서운하다.

결론적으로 사업이 잘되기 시작하고,시어머니는 나에게 더 이상 예전처럼하고 싶으신 말들을 다 쏟아내진 않으신다.


남편이 어머니와 싸워가며 어느 정도 안전거리를 두기 시작한 게 가장 큰 역할을 한 듯싶다.



시어머니는 복직하는 것도, 뭔가 새로운 돈벌이를 구상하는 것도

묘하게 불만이셨다. 대놓고 "나는 네가 돈 버는 게 싫다."라고만 말을 안 했을 뿐이다.


시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때 마다 IQ 70인 돌고래도 눈치챌 만큼 '아. 내가 탐탁지 않구나.' 느끼게 해 주셨다.




사업 초기 한창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의 날씨와 시간, 내가 안방 어디쯤 앉아 있었는지 다 기억날 정도로 찝찝한 통화가 기억난다.


시어머니는 맞벌이보다는 엄마가 아이에게 집중하고 살림을 정돈하는 데 힘쓰면 좋을 거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자신이 얼마나 가정을 위해 희생했는지, 그 덕분에 우리 가정이 얼마나 화목한지. 너는 화목한 우리 집에 시집와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간 말대답을 잘하는 며느리는아니었다. 결혼한 지 채 3년도 안되었고, 착한 며느리로서 어머니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갑자기 준비하지도 않은 대답들이 내 입에서 줄줄줄 흘러나왔다. 뭔가에 정신이 확 차려지면서 이성이나를 지배했다. 조곤조곤 말씀드렸다.



"어머니 있잖아요. 직장생활을 해보니까 진짜 일 때문에 힘들 때보다는 인간한테 오는 스트레스가 어마무시하더라고요. 혼자만 일을 하다 보면 그냥 그런 스트레스를 온전히 다 가장의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다 눌러가며 버텨야 하잖아요. 저는 남편이 힘들 때 같이 힘이 되면 좋겠어요. 누구 한 명이 경제적 책임을 다 지는 건 불공평해요. 육아도 마찬가지예요. 같이 하는 게 저는 좋아요. 진짜 확 관둬 버리고 싶은 더럽고 치사한 순간에 혼자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어머니는 생각지도 못한 말씀을 하셨다.


"그래 나도 요새 집 근처 애터미(다단계 업체)에서 뭐 해보려고 했는데 너희 아버지가(시아버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더라."


우리는 서로 씁쓸하게 웃다가 어색하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이 통화로 이제 은근히 어머니가 더 이상 내 일과 커리어에 대해 말씀하지 못하시겠구나 기대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저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후에 일어났던 몇 가지 사건으로 나는 어머니를 '어른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이른 바, 사회적으로 '어른'이면 갖추고 있어야할 언행이 있다. 내 기준에서 어머니는 사회적 정의인 '어른'으로서 부합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이 감정을 남편에게 호소도 해보았지만 동의할거란 생각은 단 1%도 하지 않는다.


여전히 어머니는 아들과 딸에게는 최고의 엄마이며 실제로 그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던 건 사실이므로 그 사실까지 부정하고 싶지 않다.


지금 와서 따지자면 나만 너무 미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애써 눌러가며 나만의 장기기억 속에 저장해 놓고 있다.


그때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라고 속시원히 물어보지 못하고 애꿎은 남편만 쥐 잡듯이 잡았던 걸 무척이나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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