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때 기억은 생생하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하기엔 각이 안 나와서 15평 빌라 거실에 수 백 벌의 아동용 우비를 사이즈별로 쌓아 두었다. 다이소에서 산 의류 전용 마킹 펜으로 벌 당 4개씩 단추 자리에 점을 찍었다. 혼자 하다 가는 며칠이 지나도 해결이 안 될 것 같아서 남편과 나누어서 작업을 시작했다. (이 기회를 빌어 함께 고생해 준 남편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우비 더미를 좁은 공간에서 오래 보다 보니 벌써부터 질린 기분이었다. 점심은 이삿날처럼 짜장면으로 해결했던 것 같다. 흡사 이삿날 아침과도 같은 모습의 우리 집이었다.
그렇게 단추 자리를 그려내고 드디어 우비는 완성단계에 들어갔다. 이제는 진짜 판매를 위한 마케팅을 해야 할 시기다.
택배봉투와 속지를 넉넉히 주문해 두고 네이버 스토어팜(당시에는 스마트스토어가 아니었다)에 우비를 상품 등록했다.
사진으로만 보면 우비가 접혀서 주머니처럼 만들어지는 모양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낑낑대며 사진을 GIF(움직이는 사진)로 변환했다. 시기는 딱 5월 말. 앞으로 포장작업까지 다해서 출고 준비를 마치려면 대략 2주 정도는 필요했다. 이 2주의 시간을 사전 마케팅 기간으로 잡았다.
당시에 내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약 1,000명 정도. 제작상품을 팔기에는 자신감만 넘치는 팔로워 수였다. 입소문이 절실했다.
장마오기 전까지는 다 팔고 싶었다. 고민 끝에 배송준비 전인 지금, 사전에 미리 예약주문을 하면 무료배송에 가격을 10% 할인 해주겠다고 공지를 올렸다.
그리고 특별히 쌍둥이 엄마가 주문하는 경우 여기에 10%를 더 할인해 주었다.
누가 올린 게시물이던 그대로 재 업로드 해주는 시스템인 ‘리그램(재생산)’이벤트도 열었다.
사업을 시작한 사실을 듣고 관심 있게 내 계정을 봐주던 친구들이 나서서 자기 인스타그램 피드에 홍보용으로 올려주기도 했다.
조금 특이한 오픈 기념행사도 있었다. 카카오톡의 단체방에 내 게시물 URL을 붙여 넣기 해서 소문내면 제품을 선물로 주는 기획이었다.
조건은 별거 없었다. 이벤트는 무조건 쉽고 간단해야 참여율이 올라간다.
엄마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이나, 조리원동기 모임이 있는 단톡방은 실로 파급력이 엄청나다. 특히 조리원 동기방(조리원에서 만난 엄마모임) 같은 경우는 1-2명의 소규모가 아니다. 최소 5명부터 많으면 10명 이상 모여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열하게 준비한 오픈 이벤트가 무색하게 생각보다 사전 예약구매의 참여율은 매우 저조했다. 그 흔한 문의조차 없었다.
지하 사무실의 5평 남짓한 내 자리에는 팔리길 기다리는 우비가 앉을자리도 없이 들어서 있었다. 실로 막막했다.
타들어가는 내 마음을 읽으셨던 건지 마음씨 좋은 공유 사무실 대표님은 내 자리 뒤켠에 2m 높이의 제품 보관 렉도 설치해 주셨다.
사전예약주문이 시작되고서야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새삼 겁도 없다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사전 예약 주문이 밀려 택배배송 때문에 미리 정신없을 걸 예상하고 아이 어린이집에다가는 늦게 데리러 올지 모른다며 당부까지 마친 상태였다.
사전 구매 참여율은 제품의 4%도 채 되지 않았다. 재고를 100장을 가지고 있었다면 4벌 정도만 미리 사전구매의향이 있었던 것이다.
어린이집에 늦게 갈 필요가 없어졌다. 너무나도 아이를 여유롭게 등원시키고, 제품을 하나하나 아주 정성스럽게 포장하고 사무실 사람들과 한 두어 시간은 수다를 떨어도 아이 하원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런 젠장. 이거 여름 내내 팔아야겠구나.’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어쩌면 내년 여름까지 팔 수도 있고 아니면 내 후년이 될 수도 있겠다 하는 불길한 느낌이 스쳐지나갔다.
큰 변화 없이 하루에 한, 두장 배송을 하고 퇴근하는 일상이 지속되었다. 사무실 사장님들은 내가 빨리 퇴근할 때마다 박장대소하셨다.
“오늘도 한 장이야?” “김사장님 벌써 가?”라는 대사로 놀려먹기 딱 좋았던 나는 사무실의 웃음거리였다. 이 때는 너무 창피해서 출근하는 동안 제발 사무실에 아무도 없기를 빌기도 했다.
그러다 판매가 시작 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무렵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메시지로 후기가 한 두 개, 도착하기 시작했다.
사전 예약한 사람들과 오픈 이벤트 행사에서 당첨된 사람들이 받았던 상품을 입혀서 실물 후기를 보내준 것이었다.
아이들이 입고 있는 사진과 함께 “생각보다 예뻐서 놀랬다.” “모자 디자인이 신기한지 벗질 않는다” 는 아주 긍정적인 메시지였다. 나는 사진 좀 쓰겠다는 허락을 구하고 바로 SNS에 후기 사진들과 나눈 대화내용을 그대로 캡처해서 올렸다.
올리면서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좋으니 아주 빠른 시일 내에 비가 오기를 바랐다. 그리고 일부러 피드에 우비사진을 올리는 걸 멈췄다. 소비자의 눈에 동일 제품이 너무 많이 띄어서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마케팅을 배워본 적은 없어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소비자와 밀고 당기기 하는 심리적인 기술은 진짜 마케팅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고급 기술이었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도 아예 다른 콘텐츠와 내용으로 바꾸었다. 제품을 살까 말까 망설이던 잠재 고객들이 이것 때문에 제품이 품절되었다고 느낀 건지, 갑자기 제품 관련 문의가 치솟기 시작했다.
또 그로부터 3일 뒤, 비가 어마 무시 하게 내렸다. 우비를 입고 등원하는 아이의 영상을 찍어 자연스럽게 홍보가 아닌 척 노출할 수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제품 판매 한 달이 지날 무렵, 나는 드디어 제품 완판 공지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첫 제작상품인 우비를 판매해서 남긴 순 수익은 200만 원이었다. 우리 가족의 수입이 두 배가 된 경이로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