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 오프너 제품이 필요하다
다단계 판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방문 판매할 때 건네기 쉽고 어렵지 않게 고객의 집 문턱을 넘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제품이다.
예를 들면 <치약>, <로션> 같은 단순하면서 가격도 부담 안되고 생필품에 속해있는 제품이 도어 오프너 역할을 해준다.
처음 만나는 고객에게 편안하게 각인되고 그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갖고 있는 특정한 아이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온라인 쇼핑몰 운영도 다단계 판매는 아니지만 비슷한 결의 상품이 존재하는 게 좋다. 결국은 온라인 판매도 대면만 안 했다 뿐이지 직접 판매 시장이 아니겠는가. 다가가기 쉽고 그 브랜드만 갖고 있는 특. 별. 한 상품이 존재해야 꾸준히 단골이 형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제작상품은 도매상품만 판매하는 것보다는 가격경쟁면에서도 유리하지만 신규 고객을 꼬시기 위해서도(꼬신다 말고 유입한다는 단어를 선택할까 했지만 어감이 이보다 찰떡같은 게 없다) 꼭 필요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독특하다. 쇼핑할 때 보면 그 특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남들과 비슷해야 한다. 그렇지만 나만 갖고 있을 수 있다면 더 좋다. 그래서 의외로 제작상품은 비슷한 감성과 트렌드를 가지되 나만 갖고 있는 특별한 제품이라는 점에서 인기가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들의 마음은 정말 다 비슷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옷을 살 때 느꼈던 감정을 내 사업에도 그대로 투영했다. 엄마들은 백화점 정도의 옷감이지만 가격은 저렴했으면 한다. 물론 한철 입히고 말수도 있단 걸 알지만 동시에 세탁해서 변형이 적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래서 제작한 우비를 판매하면서 생각했다. 백화점 버금가는 퀄리티지만 가격이 싸서 자꾸 고객을 유입시킬 수 있는 제작상품을 하나 만들어 두어야겠다고 말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한다.
나는 바로 기존에 우비를 만들어주었던 공장에 연락했다. 이대로 순조롭게만 물흐르 듯 흘러갔다면 이 창업 에피소드는 쓸 소재가 없어서 진작에 연재를 종료했어도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기존 공장에서는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다고 화답해 왔다. 공장의 실장님이 편찮아지셔서 관두고 집에서 요양 중이시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하하.
허망함도 잠시. 이제 이런 작은 허들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시작하면서 너무 순조롭게 되리라고는 기대한 적은 없다. 그래도 이건 뭐. 잘 되려고 하면 늘 어딘가에서 예상치 못한 복병이 터진다. 이래서 사업이 어렵다고 했나 보다. 하다 하다 미싱 공장 딸이 잠깐 부럽기도 했다.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 댔다. 분명히 좋은 공장하나쯤은 만날 수 있을 거다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자기 세뇌처럼 혹은 주문처럼 늘 내가 인복이 참 좋은 아이라고 했었다. 하도 그 말을 듣고 자라서 나도 모르게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다 인터넷 카페를 하나 발견했다. 그곳은 크고 작은 봉제공장들이 모여서 일감을 찾거나 하청을 주거나 아니면 자기 공장 홍보를 하는 곳이었다.
거기에 글을 올렸다. 만들고 싶은 제품과 품목을 밝히면 여기저기 공장에서 연락처를 쪽지나 댓글로 보내와서 직접 연락해 보고 공장에 방문해 볼 수 있다.
또 운이 좋게 만들고자 하는 분야의 전문 업체를 만날 확률이 높다.
의류 공장은 의외로 모든 게 세분화되어 있다. 즉 잘 만드는 제품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안 궁금한 막간 의류 공장 정보.
*주의: 읽어도 스토리를 더 잘 이해하게 되진 않습니다.
1. 다이마루 공장: 다이마루는 스웨터와 달리, 실로 직접 옷의 형태를 바로 짜는 것이 아니라, 일단 원단을 짜낸 후 이를 재단하여 만들어진 섬유를 말한다. 쉽게 생각하면 면 티셔츠, 트레이닝복 상의, 바지 같은 것들이 다이 마루 원단으로 만들어진 제품들이다. 내가 만약 티셔츠를 제작하고 싶으면 다이마루 공장을 찾아가야 한다.
2. 직기/ 우븐공장: 우븐은 니트가 아닌 대부분의 편직물을 일컫는다. 원단을 손으로 만졌을 때 늘어나지 않고 신축성이 없다. 장점은 옷의 변형이 적고 내구성이 높다. 패턴을 그린 대로 옷을 제작할 수 있다. 정장바지, 데님, 트윌, 바람막이 재질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비를 만들고 싶다면 직기나 우븐 공장을 찾아가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카페에 기재된 양식에 맞춰 제작하고 싶은 제품이 있고 아동복을 판매한다는 걸 밝혔다. 글을 올리자마자 댓글이 몇 초 만에 다다닥 달렸다. 게시물 내용은 읽어 보지도 않은 댓글 같았다.
직감적으로 끌리지 않고 찝찝한 느낌에 댓글에 달린 연락처를 눈으로 째려보기만 했다. 차마 연락을 고민만 하고 있던 차에 다음날, 누군가 나에게 쪽지를 남겼다.
짤막한 자기소개와 함께 자기와 미팅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국내 유명 브랜드 H사의 디자인실 팀장까지 지낸 의류 디자이너로 소개했다. 현재는 육아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었다. 디자인실에서 일하며 친분을 오래 쌓은 공장에 나의 주문 건을 넣고 제작해 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결정적으로 당시 유명 인플루언서의 제작 판매 제품도 그녀가 디자인하고 제작해주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사기꾼들은 쪽지에서도 그 향기가 난다. 소위 말하는 사짜 냄새가 풍기지 않는 담백한 소개와 선불을 요구하지 않을 거라 안심시키는 멘트에 나는 3일 뒤 오전. 신설동역 파리바게트에서 미팅 약속을 덜컥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