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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가봄 Jul 01. 2024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겠어요?

사람은 잘 살아보려고 노력할 때 의외로 헛 짓거리를 많이 한다고 한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다 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노를 젓는 행위를 하는 줄 알았는데 바다가 아니고 사실은 ‘뻘’이었음을 뒤늦게 아는 경우가 그렇다. 
진흙이나 갯벌에선 허우적거리면 거릴수록 헤어 나오기 힘들다. 욕심이 생기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인 줄도 모른 채 열심히 몸을 움직여 자신을 더 옭아맨다. 

그날 신설동역 파리바게트에 앉아 심란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오늘 미팅이 망할 경우 또 어디다 의뢰를 해야 하나 막막한 심정에 애꿎은 핸드폰만 연신 만지작거렸다. 봉제카페에 올린 게시물의 댓글들을 한번 더 살펴보고 있는데 누군가의 출입을 알리는 요란스러운 종소리에 내 시선이 자연스레 출입문으로 향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패션 쪽 디자이너 일 것 같은 감각적인 옷차림이었다. ‘아, 이분이구나’ 싶은 강렬한 느낌. 

이 실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눈앞에 새로운 뷰티 필터가 하나 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외롭기도 하고 체력적으로 고단 했기 때문에 은연중에 심리적으로 기댈 곳을 찾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동안 전공과 아예 무관한 분야에 뛰어들어 아동복을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제작해서 판매한다고 나름 맨땅에 헤딩 격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와중에 내 속에는 내가 그래도 장사할 짬밥은 아닌데 하는 허무맹랑한 자존심이 있었다. 


돌이켜 떠올려 보니 진짜 전쟁은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장사나 하라고 커리어에 그렇게 목숨을 걸었나 싶은 마음. 아이를 낳을 무렵 나이도 아직 20대인 데다, 다니던 외국계 회사에서 한참 인정받고 있을 때 나는 퇴사를 해야 했다. 


사람냄새만으로도 당장 내 앞사람 정수리에 토할 것 같던 입덧을 참아가며 매일 아침 지하철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출근했던 때가 있었다. 


몸은 힘들었어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악착같은 심정은 아니었다. 아이고 뭐고 내 커리어를 지키려고 ‘나만 생각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자아분열이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있었지만 애써 참아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깊은 외로움과 두려움이 늘 내 안에 있었다. 돈은 벌고 싶은데 이상한 방법으로 계속 ‘이게 맞겠지?’하는 심정으로 꾸준히 <잘 파는 사람>을 흉내 내고 있던 것이다.  


그동안 나 혼자 얼마나 좌충우돌했는지 그 간 해왔던 일들을 오늘 처음 만난 실장님에게 나열하며 열변을 토했다. 울지는 않아 다행이다. 얼마나 없어 보였을까 싶다. 


이 새로 만난 구원자는 나의 고충과 힘듦을 다 알아들은 듯 보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그저 돈 줄로 보였을지도 모른 지만) 


진한 공감의 눈 빛으로 날 위로함과 동시에 앞으로 자신과 함께 한다면 보다 제작을 전문적으로 잘할 수 있음을 어필했다. 


그때 내 기분은 마치 상처투성이가 된 나를 구원해 줄 이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앞으로의 고민이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강하지 않은 어조로 말하는 그녀는 사기꾼 냄새가 나지 않았다. 아마 나와 같은 아기 엄마라 더 전폭적인 신뢰감이 들었던 것 같다. 똑같이 유치원생 아들을 하나 키우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프로필을 간략히 설명해 주었는데 그녀라면 나의 브랜드 제작을 맡겨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들고 싶었던 가족 커플 맨투맨에 대해서 단어를 꺼내자마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제작 과정을 어떻게 진행할 건 지에 대해서 다음 스텝을 줄줄이 설명해 주었다. 


원단의 두께와 재질, 공장에는 어떻게 의뢰할 건지, 제작 후에 판매 단계에서는 어떤 식으로 어필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안개 낀 듯 뿌옇게만 보였던 창밖의 흐린 풍경에 와이퍼가 지나가서 확 선명해지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각종 어려운 의류 제작 용어들을 아주 쉽게 내 앞에서 풀어내는 그녀가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당시 나는 여러 유명 아동복 제작 인플루언서들을 벤치마킹하려고 다양한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중 내가 제일 우러러보던 한 브랜드에서 제작을 의뢰받았다고 하고 실제 증거도 보여주었다. 나는 그 즉시 무장해제가 되었다. 



대형 브랜드가 아닌 이상 의류 제작 업계에서는 특별한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는 편이다. 중소 업체들은 공장에 작업 지시서를 의뢰하면 그것이 그대로 계약이 되어 버린다. 공임도 서로 구두로 조정하고 결정한다. 


으레 그녀도 공식 계약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다만 사업자 세금 계산서를 제작 공장에 의뢰는 해볼 수 있다고 하였으며, 실제 제작 단가에 10~20% 정도를 자신이 수수료로 가져간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특별한 작업 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은 채 엄마랑 함께 입는 맨투맨을 얼마나 어떤 컬러로 제작할지 구두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다음 미팅을 계획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발을 담갔던 첫 순간이었다. 




이전 13화 이상한 실장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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