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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 Jul 15. 2024

주객전도.

그냥 강하게 "도저히 자신이 없다." 하면 되었을 텐데 왜 그땐 그 정도 말도 못 했었는지 모르겠다. 나 자신이 한심하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그녀는 갈수록 무리한 요구를 했다. 한달에 한번 이상 꼭 신제품을 생산해야 한다고 그래야 자신이 제품을 맡기는 공장에서도 규칙적으로 주문을 넣는 브랜드를 밀어줄 수 있다고 했다. 


쉽게 말해 따박따박 끊기지 않는 발주를 원했다. 

꾸준히 물고 들어오는 브랜드가 있어야 자기도 위신이 서서 공장에서 유리한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내가 불규칙적으로 제작을 의뢰하는 데다 수량도 워낙 적어서 제작 단가를 낮춰서 제작할 수 없게 된다는 걸 근거로 댔다. 실제로 없는 말은 아니니 정말 곧이 곧대로 믿었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최대한 한달에 한번 못해도 두 달에 한번은 제작을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원래는 분기에 한 두번씩 이벤트처럼 제작을 해서 사입과 함께 병행하려고 했었던 것인데 일이 점점 꼬여가는 느낌이 들었다. 


억지로 제품을 생산해 내려니 아이디어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낮에는 포장하고, 저녁엔 육아에 지쳐있던 내가 시장조사를 나간다는 것도 당시에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주객 전도. 이 단어가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의뢰받아 제작한다는 유명 인플루언서 계정에 들어가 보았다. 제작상품은 분기에 한번 아니면 1년에 한번 할까말까 불규칙적으로 생산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나한테는 그런 무리한 요구를 했었 던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갈수록 서로의 위치가 모호해졌다. 점차 나를 자기 부하직원 부리듯이 부리는 그녀의 태도가 갈수록 진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몇가지 크고 작은 어려움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바로 '재고가 쌓여간다' 는 것이었다. 


미처 사전에 제작한 옷들이 모두 팔리 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음 신상품을 기획해 가며 재고는 어떻게 처리하는 건지 노하우가 하나도 없었다. 세일을 하면 되는데 이미 판매가 자체가 세일가였기 때문에 더 이상 물러날 곳 없이 진퇴양난이었다. (거의 제작 초창기에는 마진이 아예 없었다) 그냥 장기간 끈기있게 파는 밖에는 몰랐다. 


제작하고 남은 재고에 머리를 아파서 신제품 제작을 거절하니, 

동네 시장이나 아동복 매장에 직접 찾아가서 재고를 헐값에 넘겨 손해를 보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며 훈수를 두었다. 


그녀의 훈수에 제대로 휘둘린 건지 그 당시 나 조차도 스스로 강인한 끈기와 의지가 없는 건 아닐까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히 사장이라면 시도라도 해보아야 할 것 같았다. 동네 오며 가며 봐 두었던 아동복 매장에 재고를 들고 실제로 찾아 간 적도 있다. 



첫 운을 뗄 때의 뻘쭘함과 거절당했을 때의 아득함은 이루 설명할 말이 없다. 

사실 백화점에 납품되었던 아동복도 아니었고 유명한 인플루언서도 아닐 때라 오프라인 아동복 매장에서 거절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그냥 잡상인이 들어와서 자기 재고 떼가라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것 같다. 



그렇게 야금야금 내 자존감도 낮아지고 있었다. 지금 에서야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에 평가할 수 있는 거지만 그 때는 꼭 이 실장님이 아니면 제작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돈을 주는 입장에서 마치 내가 채무자가된 느낌이 들었다. 늘 쫓기는 느낌으로 그녀의 장단에 발을 맞춰야 했다. 


리오더(같은 제품을 재주문)가 없으면 제품탓이 아니라 제품을 잘 팔지 못한 내 잘못이라는 듯이 분위기를 조성했다.  


순전히 내 탓인 것 같아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잠도 못 자고 고민하곤 했다. 같이 작업하는 내내 점점 스스로의 자존감이 낮아 지는게 느껴졌다. 


사실 제작 및 디자인을 아무래도 나보다 전문가에게 의뢰하고 싶었던 나의 최초 의도와는 달리 디자인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내면 안되는 이유를 오만가지 갖다 붙여서 디자인을 굉장히 제작하기 쉽게 심플하게 만들어 버려서 최초 기획과는 전혀 다른 샘플이 나오기도 했다. 


전적으로 의뢰를 하고 싶어도 디자인 추천해주는 원단이나 느낌들이 최신 트렌드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사이즈별로 제작 수량에 차등을 둬서도 안됐다.


아무래도 스몰 사이즈가 잘 나가니 스몰 사이즈를 더 많이 만들어서도 안된다. 무조건 공장 위주로 재단하기 쉽도록 제작을 해야 했으니 잘 안나가는 사이즈의 재고는 정해진 수순 이었다. 


그러면서 자존심도 많이 무너졌다. 바보처럼 사는 곳도 감췄다. 빌라에 살면서 근근히 제작을 하는 이미지까지 보태지는게 죽기보다 싫었다. 당장에 은은한 무시를 견디고 있는 와중에 아예 대놓고 무시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은 미팅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나를 태워다 주겠다고 했던 적이 있다. 최대한 살고 있는 빌라 가까운 아파트 앞에서 내리고 차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다 지켜본 후 에야 집으로 들어왔다. 


돈과 자존심과 온갖 복잡한 심정에 매몰되어서 생긴 스트레스로 편두통까지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가지 엄청난 장점이 있었다. 이때 원단의 특징과 불량 대처법, 그리고 제작 판매에 대해 아주 자세히 몸소 파고들어서 배워볼 기회였다는 점이 그것이다. 


제작하면서 ‘안되는 점’을 설명을 듣다 보니 봉제의 특징과 원단과 옷감 별 특이사항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공장에만 안들어가 봤지 봉제공장이 훤히 그려질 정도였다. 


어느 날 그녀는 원단 시장으로 직접 나를 불렀다. 무거운 스와치를 늘 들고 다니는게 힘들었던 모양이다. 


필요하면 직접 나와서 스와치를 걷게 할 심산이었는지 아주 세심하게 각층별로 어떤 원단들이 있는지 자기가 다니는 동선과 밥집까지 알려주며 코치를 해주었다. 


점차 제작 방법에 대해 익숙해질 무렵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식대로 밀고 나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 무렵 내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5,000명을 지나 가고 있었다. 



이전 15화 내가 호구 사장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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